자 료 명 | 가재사실록 (嘉齋事實錄) |
연대/시기 | 조선후기/ 숭정후사을축년(고종2년)/1865년 |
발간/저자 | 8대손 전기락/ 가재 전동흘 |
책수/규격 | 1책 단본/ 목활자본/ 21.5×32.1cm |
소 장 자 | 흘러가는 김진영 |
○ 숭정후을축년(1865)에 전동흘의 8대손 전기락,전기홍이 근서하여 송래희와 정래협의 서문과 김응표의 발문을 붙여 1책 단권으로 간행되었다. 책에는 영국원종공신록권전지, 가재공 행장과 사실, 현판문 비문, 수조록, 방목, 세병관현판, 장화홍련전, 사실록발문 등을 수록하였다. 특히 전동흘이 철산부사시절에 두 자매의 원한을 풀어준 이야기를 6대손 전만택의 간청에 의해 1818년(순조18)에 박인수가 쓴 장화홍련전이 수록되어 있다. ○ 전동흘은 진안군 진안읍 가림리 출신으로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사탁(士卓), 호는 가재(嘉齋)이며 1651년(효종 2) 무과에 급제하고, 용맹을 인정받아 북벌을 기도하던 효종에 의하여 발탁되었다. 이상진(李尙眞)·소두산(蘇斗山)과 함께 3걸로 불렸다. 내외의 무관직을 역임한 뒤 수령이 되어 여러 군현을 다스렸다. 1662년(현종 3) 고부군의 환곡허록사건(還穀虛錄事件)과 관련하여 일시 처벌받았고, 1672년경에는 정초중군(精抄中軍)이 되기도 하였다. 1673년 함경도남병사에 임명되어 이후 4년간 봉직하였다. 이 때 함경도 군향(軍餉) 환곡(還穀)의 부족분 7,706석의 탕감을 관철시켜 백성들의 칭송을 들었다. 그 뒤 총융사를 거쳐 포도대장에 이르렀다. 일찍이 철산부사가 되어 억울하게 죽은 장화(薔花)·홍련(紅蓮)의 원한을 풀어주었다고 한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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