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덕유능선

해인사 25

해인사 만불보전 주련 海印寺 萬佛寶殿 柱聯

◎ 해인사 구광루九光樓는 전면  8칸 2층누각으로 해인사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1층부는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고 2층은 만불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만불보전 8개 기둥에 새겨진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 구광루란 화엄경의 내용 중에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때 眉間白毫미간백호에서 9번의 광명을 발하셨다"고 하는데서   얻은 이름이라 한다.

해인사 대적광전 주련 海印寺 大寂光殿 柱聯

◎ 해인사 대적광전 주련(6구절)   -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며, 전각 기둥에 새긴 주련 또한 화엄경의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2구절은 고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 13세때 쓴 글이고, 나머지 4구절은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이다. 부자간의 글씨인데, 흥선대원군이 고종이 글씨를 허투로 쓴다고 핀잔하며  붓을 뺏어서 나머지 4구절을  마저 썼다고 한다.  주련을 자세히보면 오른쪽 주련 2구와 나머지 4구의 필체가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 주련 밑 동판에 글씨 설명문이 부착되어 있다.

합천 해인사 존상도 陜川 海印寺 尊像圖

◎합천 해인사 존상도  - 1457년(세조3) 세조는 해인사의 고려 팔만대장경 50부를 인출하면서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판전에 대한 중수를 명하였다. 어진 하단의 화기에 따르면 1458년(세조4) 영중추부사 윤사로와 승정원도승지 조석문이 세조의 어진을 조성하여 금탑전金塔殿에 봉안하였다고 한다.이 그림은 불교적인 특징이 두드러져 화승畵僧에 의해 비단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전기 인경 및 중건 불사를 단행한 세조와의 관계와 해인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경상남도 문화유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해인사성보박물관) ◎세조 어진

촛대

◎ 해인사 촛대  - 조선시대에 유기로 만들었다.  - 선조가 사명 유정 泗溟惟政(1544~1610)스님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촛대 1쌍이다. 거북모양 촛대는 팔각형의 몸통에 연꽃과 비늘 문양을 새겨 장식하였다. 봉황 모양 촛대는 암수 한쌍의 봉황이 기암괴석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파란색과 금색, 분홍색 등으로 칠을 하여 화려함을 더하며 매우 수려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해인사성보박물관에 기획 전시 중이다. (해인사성보박물관) ◎ 촛대

금패 禁牌, 칙령패 勅令牌

◎ 금패  - 조선후기에 나무로 만들었다. - 명례궁明禮宮에서 해인사에 봉산封山을 수호할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사찰에서 직접 처벌할 수 있도록 하사한 금패이다. 해인사는 1897년 명례궁으로부터 *향탄봉산 香炭封山으로 지정되어 산을 제한하고 구획하여 무단으로 들어와 땔나무나 잡목 등을 벌채하는 것을 금지 하였다.   *향탄 香炭: 능, 원, 묘 등에서 제향에 사용되는 숯을 말함. ◎ 칙령패 - 조선후기 나무와 실로 만들었다. - 해인사가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였다는 것과 왕실에서 고려대장경이 봉안되어있는 장경판전의 보존을 중요시 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칙령이 적힌 패이다.    *칙령: 어실을 수호하고 산을 막아 금호하며, 13도의 승풍을 바로잡기를 법종찰 도총섭에게 명함. 궁내부 ..

건칠 희랑대사좌상 乾漆希郞大師坐像

◎ 건칠 희랑대사좌상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희랑스님의 조각상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승의 초상조각이다. 희랑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이자 북악파의 대표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과 고려 건국에 크게 기여하여 왕건의 국사國師(스승)로 모셔졌다. 조각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희랑스님이 생전에 스스로 조성했다 전해진다. 얼굴과 몸체 앞면은 건칠乾漆(삼베에 옻칠을 반복 하는 것) 기법을 사용하고 뒷면과 바닥은 나무로 조성하였다. 등신대와 가까운 크기로 극사실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원래 까만 옻칠만 되어있던 것을 이후 후학들이 채색하였다. 특이하게 가슴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해인사에 모기가 많아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자 희랑스님께서 자기 가슴에 구멍(흉혈胸血)을..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518호)

◎ 원당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길 141-22(치인리30) ◎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 소속 암자로 방장 원각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곳이다. 802년(애장왕3)에 창건하여 봉서사라 하였다가 신라왕실의 원찰이라하여 원당암이라 부르고 있다. ◎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518호) - 원당암 보광전 앞에 신라 말기에 조성한 11층으로된 다층석탑과 석등이 나란히 서있는데 9세기 후반 진성여왕시대의 작품이라 추정되고 있다 한다.

최송설당(崔松雪堂) 암각서

◎ 최송설당 崔松雪堂 암각서   최송설당 암각서는 해인사 룸비니동산 광장 오른쪽 산등성이 큰 바위 상단에 새겨져 있는데  여간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답사를 하려면 룸비니동산을 가로질러 광장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야 되며, 답사가들이 남긴 발길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뿐이다.  바위상단에 최송설당이라 한자로 음각되어 있다. 최송설당을 기리는 시주비와 암각서가 해인사, 통도사,  법주사 복천암, 창녕 도성암, 창원 성주사, 김천 청암사 등 전국 사찰 여러 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특히, 해인사와의 인연은 1898년 최송설당이  팔만대장경 전체를 인경 제작하는 사업을 전액 후원하여 1질에 1,270책씩  총4질을 만들어 삼보사찰(통도사,해인사,송광사)에 1질씩 나누어 봉안하고, 1질은 전국사찰에 고루 나누어..

유가야기遊伽倻記 - 홍하문,봉황문,불이문,대적광전 편액

◎ 유가야기遊伽倻記 - 유척기兪拓基 1712년  - 寺之外三門. 日紅霞. 次日鳳凰. 次日不二. 次鐘閣日圓音. 內有正門. 中創法堂. 扁以大寂光殿. 匪解堂筆也.   "절에는 외문이 세곳이 있는데 홍하문紅霞門, 다음이 봉황문鳳凰門,  그다음이 불이문不二門이다. 그 다음에는 종각인 원음각圓音閣이 있다. 안쪽으로 정문이 있고, 가운데 법당이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쓴 편액은 '비해당 匪解堂'이 썼다. (참고:보장천추 비밀의계곡) ▷비해당 匪解堂: 이용李熔, 안평대군(세종대왕 셋째아들)▷대적광전大寂光殿 편액: 유척기의 유가야기가 쓰인것이 1712년이고, 이후에 해인사에 1780년(정조4)과 1817년(순조17년), 1871년(고종8년)에 세번의 큰 화재가 있었다. 이로인해 안평대군이 쓴 대적광전 편액은 이..

유가야기遊伽倻記(정혜스님定慧)

◎ 유가야기遊伽倻記 - 유척기兪拓基 1712년  有一老釋. 云自妙香來棅. 年今七十五. 神觀不衰. 談辯快爽. 若有道者. 其名定慧.  한 늙은 승려가 "묘향산에서 와서 산 지 올해 75년째" 라 하는데, 신이한 풍모는 쇠하지 않았고 말도 막힘이 없다. 도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그 승려는 이름이 정혜定慧라고 했다. ▷ 정혜스님(1685~1741)은 호가 회암晦庵이다.  해인사에 주석할 때에 최치원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를 남겼는데 이를  바위에 새겼다. 차운시를 새긴 암각서는 농산정 건너편 도로가에 있다.- 차운시   聞道孤雲入此巒. 不知靈跡依何間. 謾將開眼看潯處. 動者流川靜者山.   晦庵 定慧 謹記 - 고운 최치원이 이 산에 들어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신령스러운 발자취 어디에서 머물었는지 알 수 없구나. 느..

가야록伽倻錄(가야산 등산기행 1625년)

◎남계 이중무 柟溪 李重茂위 가야산 유람기인 "가야록" 등산기행 따라가기  ▷ 가야록 등산기행 코스: 해인사海印寺→ 봉천대奉天臺→석굴→관통굴→샘가→우수봉(牛首峰)정상→우비정샘물牛鼻井  ▷ 산행코스: 2024.8월 해인사→토신골 → 봉천대 → 석굴 → 관통굴 → 우두봉(상왕봉,우비정) → 칠불봉 가야록(1625년 9월 15일) 새벽밥을 먹은 후에 건장한 한 화상으로 하여금 점심 밥 상자를 짊어지고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이 날이 15일이다. 봉천대(奉天臺)에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산이 더욱 험준하고 길이 더욱 위험하였다. 수풀이 우거져 근근이 기어갔다. 한 곳에 이르자 석굴이 있었는데, 몇 간의 방 크기만 하였다. 돌문을 따라 들어가자 냉기가 뼈에 사무쳤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은 얼음이 언덕처럼 ..

홍류동 간이발전시설

◎ 홍류동 간이 발전 시설은 1950년대 치인마을 주민들이 상류 계곡물을 끌어들여 필요한 전기를 자체생산 하던 소수력 발전시설(물레방아)이 있던 곳이다. 1971년 상용 전력이 들어오면서 필요가 없어져 방치된 발전시설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수로와 물레방아 등을 원상복원 했다고 한다.  20여년 세월 가야산 산골마을 이곳 저곳 불을 밝혀 주었던  물레방아 발전시설은 당시 주민들의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으며,  오고가는 소리길 탐방객들에게 볼거리와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있다.

해인사 지족암 가을!!!

◎해인사 지족암知足巖   -위치: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18-53   -답사일: 2023.10.31 화   -지족암은 해인사의 산내암자로 원래 도솔암이라 불렸다고 하며 창건연대는 미상이며 신라말에 희랑대사가 머물며 최치원선생과 시문을 나누었다고 한다.  1893년 환운스님이 중건하여 지족암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1976년 동곡당 일타스님이 주석하면서 중창하고 2013년 향적스님이 중수하였다고 한다. 건너쪽에는 희랑대가 보이고 대몽각전 뒤 산봉우리 바위 위에 부처님 발자욱이 새겨있다.

해인사 희랑대 가을!!!

◎ 해인사 희랑대希朗臺   - 위치: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18-55   - 답사일: 2023.10.31 화요일   - 해인사 희랑대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의 산내암자로 중창주이신 희랑조사께서 참선과 염불을 수행하던 장소로 주변 지형과 산세가 나반존자那畔尊者의 도량과 흡사하다 여기시어 평소 좌선하시던 바위옆에 소나무를 심고 도량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희랑대는 기묘한 지형과 수승한 풍치가 장관을 이루고 있어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비유되고 있다.희랑대 독성각에 모셔진 독성 나반존자의 그 가피와 영험함이 유명하여 기도성취를 이루고자하는 대중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해인사 백련암 가을!!!!!

◎해인사 백련암백련암   -위치: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118-116   -답사일: 2023.10.31 화   - 해인사 백련암은 1605년 소암昭巖선사께서 중창하였다. 노송기암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서쪽 칠성대七星台 전면에는 불면석佛面石, 동쪽에는 환적대幻寂台 그리고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영구천靈亀泉(藥水)이 있고, 자못 경치가 뛰어나며  고요하기 또한 산중제일이므로 옛부터 수도도량으로 유명하다. 환적,인파,활해 등 많은 큰 스님들이 배출되었다.백련암은 성철 종정 큰스님이 주석하였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해인사경내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해인사 국일암 가을!!!

◎ 해인사 국일암國一庵   - 위치: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18-68   - 답사일: 2023.10.31 화   - 해인사 국일암은 1637년 벽암碧巖스님께서 중건하였으며, 조선 인조가 벽암스님에게 국일암대선사의 호를 내렸다고 하여 국일암이라 부르게되었다고 한다. 국일암은 비구스님들의 선원으로 이름이 높으며 벽암선사의 진영을 보존하고 있으며 벽암스님은 부휴선수대선사의 제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