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덕유능선

가야산과 해인사/가야산 탐방 5

고운암(孤雲庵),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

◎ 고운암(孤雲庵),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 고운암은 1974년 법모法模스님께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한다. 정면으로 가야산 상왕봉(1430m)이 올려다 보이고 그 아래 환적대를 중심으로 백련암과 지족암, 희랑대가 손에 잡힐 듯 정면으로 바라다 보인다.  단지봉(1028m)아래에 자리한 고운암은 해발860여m에 위치하고 있다. 해인사 암자 중 고불암(900m)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때 송운암(松雲庵)으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한다.◎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는 "고운 최치원선생께서 이곳에  초가움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은거하며 살았던  터" 라 는   뜻이며, 당초 절터에 있었던 비석을 고운암을 중창할 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 해인사 119소방대 앞쪽..

가야록伽倻錄(가야산 등산기행 1625년)

◎남계 이중무 柟溪 李重茂위 가야산 유람기인 "가야록" 등산기행 따라가기  ▷ 가야록 등산기행 코스: 해인사海印寺→ 봉천대奉天臺→석굴→관통굴→샘가→우수봉(牛首峰)정상→우비정샘물牛鼻井  ▷ 산행코스: 2024.8월 해인사→토신골 → 봉천대 → 석굴 → 관통굴 → 우두봉(상왕봉,우비정) → 칠불봉 가야록(1625년 9월 15일) 새벽밥을 먹은 후에 건장한 한 화상으로 하여금 점심 밥 상자를 짊어지고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이 날이 15일이다. 봉천대(奉天臺)에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산이 더욱 험준하고 길이 더욱 위험하였다. 수풀이 우거져 근근이 기어갔다. 한 곳에 이르자 석굴이 있었는데, 몇 간의 방 크기만 하였다. 돌문을 따라 들어가자 냉기가 뼈에 사무쳤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은 얼음이 언덕처럼 ..

남계 이중무 가야록 柟溪 李重茂 伽倻錄

=남계 이중무 1568(선조1)~1629(인조7)= 남계문집 가야록  내가 의춘(宜春) 에 있을 때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의 시를 읽었으니, 가야산을 안지는 오래되었다. 근래에 산의 아래에 거처하니 일상생활 중에 서로 접한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 일이 많아 오히려 한 번도 그 실제 경치를 구경하지 못하였다.이제 가수(嘉樹)에 사는 직보(直甫) 정건직(鄭謇直), 보이(輔而) 송익(宋翊), 응보(膺甫) 이봉일(李奉一), 낙옹(樂翁) 임진부(林眞怤), 덕휘(德輝) 허돈(許燉), 이경(以敬) 홍탈(洪梲), 강양(江陽)에 사는 덕연(德淵) 정인준(鄭仁濬), 임백(任伯) 권양(權瀁), 백화(伯和) 박인(朴絪), 여첨(汝瞻) 김수남(金秀南)과 더불어 지팡이를 함께 하였다.이날은 바로 천계(天啓) 을축년(1..

홍류동 간이발전시설

◎ 홍류동 간이 발전 시설은 1950년대 치인마을 주민들이 상류 계곡물을 끌어들여 필요한 전기를 자체생산 하던 소수력 발전시설(물레방아)이 있던 곳이다. 1971년 상용 전력이 들어오면서 필요가 없어져 방치된 발전시설을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수로와 물레방아 등을 원상복원 했다고 한다.  20여년 세월 가야산 산골마을 이곳 저곳 불을 밝혀 주었던  물레방아 발전시설은 당시 주민들의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아있으며,  오고가는 소리길 탐방객들에게 볼거리와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