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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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건당집(兩蹇堂集)

흘러 가는 2022. 2. 3. 14:29

○양건당집

자 료 명 양건당집(兩蹇堂集)
연대/시기 조선후기/ 정유년(1897)
발간/저자 황대중(黃大中 1551~1597)/ 송사 기우만 찬/황영,황평,황영,황간,황철현 발문
책수/규격 1책 단본 / 목활자본/ 20.2×31.3cm
소 장 자 흘러가는
  양건당 황대중(兩蹇堂 黃大中 1551~1597)의 유고집이다. 1894년 월성 최익현(月城 崔益鉉)의 양건당실기 서문과 일신재 정의림(日新齋 鄭義林)의 서문을 붙여 1896년 후손 황영,,,,철현의 발문과 함께 1897년 송사 기우만(松沙 奇宇萬)이 쓴 유고집이다.
내용은 부(),시문,행장 등과 이순신장군의 조의문, 임진난 김육 창의록과 남원순의록,호남절의록,옥천동의록이 실려있다.
서울 출신이었으나 영암군수로 부임하던 조부를 따라 강진으로 이주해 살았다. 효성이 지극한 걸로 알려져 어머니가 병환 중일 때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 약재로 사용하여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는데 사람들은 그를 효건(孝蹇)이라 불렀다.
1592(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의 어가를 호위하는 별초군으로 지원하였고 전국에서 무예가 뛰어난 장정 80명을 모집하여 선조가 의주로 피란갈 때 호위 무사로 활약했다.
1593(선조 26)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탈출해 이순신 장군의 휘하 장수로 활약했다. 이때 황대중은 해상 전투 중 총탄을 맞아 나머지 한쪽 다리 마저 절게 되어 충건(忠蹇)이라 불리워 효건과 충건 즉 양건당이라 불리운다.
1597(선조 30) 정유재란 남원 전투 당시 전투 도중 병마절도사 이복남과 함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남원 만인의총 충렬사에 제향되었다.(출처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