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오수면 금암리 망북정(望北亭) 터
오수역(獒樹驛)
【오수역지서(獒樹驛誌序)】
무릇 역(驛)이란 명령을 차례차례 전달하기[遞傳] 위해 설치한 것이니, 명령이란 바로 덕(德)을 사방에 널리 퍼뜨리는데[流行] 그것을 차례차례 전달하여 신속히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덕이 널리 퍼뜨려지는 것은 역[郵]을 설치하여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빠르다.”라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마음속으로 헤아려보고 스스로 말하기를, “참으로 성인(聖人)다운 말씀이시구나.”라고 했다. 덕이란 말뜻을 터득하여 도(道)를 행함에 있어 마음에 덕을 얻으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진심으로 기뻐하며 정성껏 감복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치 강물이 터져 누구도 막을 수 없듯이 덕이 자연스럽게 널리 퍼뜨려진다. 따라서 덕으로 베푼 교화[德敎]가 온 천하에 성대히 넘쳐나니, 명령을 전달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덕이 퍼져나가는 것이다.
생각하건대 동방의 우리나라는 바닷가 모퉁이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어 땅덩어리는 매우 작지만, 예의바른[衣冠] 문물 제도는 모두가 동주(東周)1)에 버금간다. 안으로는 정승[揆宰]벼슬이 있고 밖으로는 지방고을[州牧]이 있어, 정치 교화[政敎]와 호령이 사방에 널리 퍼져나가는데, 명령을 차례차례 전달하는 것이 바로 찰방(察訪)[督郵] 벼슬이다. 찰방의 맡은 바 역할이 그처럼 또한 매우 중요한 것이다.
오수역(獒樹驛)은 영남(嶺南)과 호남(湖南)의 교차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으로 지리산(智異山)[方丈山]을 마주보고[照] 북쪽으로 팔공산(八工山)을 굽어보며 자연의 경치가 밝고도 곱다. 토지는 널찍하고 평평하며 주민들은 예스럽게 순박하다. 이따금 비범한 인물이 나왔으니, 김개인(金盖仁)에 관한 사적에서 잘 드러난다 하겠다. 김개인은 개를 잘 길렀는데 개는 죽음마저도 잘 견디었다.[能死] 김개인이 개를 묻은 곳에 꽂아놓은 지팡이가 잘 잘라서 삼가 울창한 모습을 이루었으니, 이 때문에 땅 이름을 ‘개 무덤에서 자란 나무’라는 뜻에서 ‘오수(獒樹)’라고 붙인 것이다.
그리하여 뒷날 여기에 살거나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그 말뜻을 절묘하게 여기어 그 나무를 아낌으로서 자르거나 베어버리지 않도록 한 것이다. “나그네 마음에 주인 향한 사무치는 그리움 문득 떠오르네.”라는 구절의 시가 지어졌으며, “감동을 일으키는 착하고 올바른 의리는 오래오래 전해지어 나날이 새로워지리라.”라는 기문(記文)의 서문도 지어졌다.
대개 김개인이란 자는 틀림없이 덕을 지닌 사람이며, 개라는 것도 역시 예사롭게 소란을 피우는[蠢動] 동물이 아니다. 생각하건대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先君]께서 여기에 부임하였을 때 반드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김개인처럼 정성으로 개를 잘 기른다면, 개도 주인을 위해 목숨을 잘 바칠 수 있다. 하물며 사람이 김개인 같은 정성으로 다른 사람을 잘 감화시킨다면 어찌되겠는가. 백성의 부모와 같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갓난아이를 돌보듯이 백성을 보살핀다면, 백성들 모두가 요순(堯舜)시대의 백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성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길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될 따름이다.”라고 하셨다. 재임하신 6개월 동안 사리에 밝게 너그러이 다스리고 꼬치꼬치 캐내어 추궁하시는 법이 없었다. 형벌을 베풀지 않고도 편안[無事]하게 공무를 행하였다. 백성들이 모두 감화되어, 이임하실[臨駕] 때에는 수레의 멍에를 끌어당기며 유임하여 달라고 간절히 요청하기까지 하였다. 이제 어언 3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옛일을 잘 아는 늙은이들이 서로 전하기를, “전무후무하신 분이었다.”라고 하였다. 아! 훌륭하구나. 아! 가슴아프구나. 돌아가신 아버님처럼 재주와 덕을 겸비하고 하늘이 그 목숨을 빌려주어서[假壽] 세상에 쓰여져 그처럼 훌륭한 평판과 폭넓은 명예를 누린 분이, 어찌 다만 여기에 그쳤단 말인가. 나처럼 못난 자식이 고향[桐鄕]에 부임해 녹봉만 축내면서 아버님이 이룬 공로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못하는 죄를 저질렀으니, 무거운 짐을 지고 어쩔 줄 모르는 근심[負重溺戢]을 또한 이미 매우 간절히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돌아가신 우리 아버님으로부터 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 최주하(崔柱夏)란 어진 찰방[賢丞]이 계셨는데, 그도 역시 김개인에 관한 일에 감동하여 김개인의 사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개[獒]와 나무[樹]를 육가(陸家)의 흰 꿩[鷴]과 악묘(岳墓)의 도끼자루[柯]2)에 비유해, 구구절절이 감탄하며 크게 칭찬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권하고 격려하였다.[勸勵] 마음을 쓰는 사이에 감정[情狀]이 참으로 절실하고 말뜻이 환하게 통하여, 그 글을 보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책을 어루만지며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스스로 덕을 지닌 분이 아니라면 어찌 이러한 글을 지을 수 있겠는가. 나는 반드시 이러한 분을 위해서 자세히 기록으로 남기련다.
최주하는 강희(康熙) 무자년(1708, 숙종 34) 가을에 오수역 찰방으로 부임하여 많은 선정(善政)을 베풀었다. 이 때 북쪽 정자[北亭]에 올라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고, 바위 표면에 ‘망북정(望北亭)’이란 글자를 새기도록 하였다. 또 그 아래 금암(金岩)의 너럭바위 위를 노닐며[逍遙] 시를 읊고 술잔을 기울여, 문득 저정(滁亭)에서 노니는 즐거움3)을 누리었다. 그 사람됨을 상상할 수가 있으니, 틀림없이 성실하고 순박하며 인정이 두텁고 담박한 사람일 따름이다.
얼마 뒤 이듬해 여름에 아무런 까닭 없이 파직 당하니, 사람들이 모두 파직 조치를 그르게 여기며 안타까워하였다. 4년이 지난 계사년(1713, 숙종 39)에 다시 오수역 찰방에 부임하여, 처음 부임하였을 때처럼 덕스럽게 선정을 베풀었다. 이러한 사람이 이른바 성실하고 담백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최주하가 돌아간 뒤에 오수역 백성[驛民]들이 비석을 세워 그의 덕을 기리고, 향(香)을 마련하여[瓣香] 정성껏 제사를 모셨으니, 이 역시도 세상에 드문 일이라고 하겠다. 뒷날 이곳에 온 사람들이 어찌 그 덕을 우러러 사모하며 흠모[歆慕]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에 감사의 마음을 표하는[謝之] 바이다. 또한 역지(驛誌)를 편찬하고[編考] 따로 아래와 같이 각기 차례대로 정리하며, 되는 대로 시 한 구절을 읊어 앞사람의 훌륭한 업적[瓊琚]에 보답하려 할 따름이다.
을사년(1845, 헌종 11) 여름 본관이 경주(慶州)[鷄林]인 김우동(金羽東)이 서문을 적다.
[구지(舊誌)]
김개인은 거령(居寧) 사람이다. 개 한 마리를 길렀는데 매우 어여뻐했다. 일찍이 어느 날 외출을 하였는데, 개도 역시 그를 따라 나섰다. 김개인이 술에 취해 길에서 잠을 자는데, 주변의 들판에서 불이 나서 차츰 김개인이 자는 곳까지 번지려고 하였다. 개가 옆 냇물에 몸을 적셔 왔다 갔다 하며, 주인의 주변을 빙 둘러서 제 몸에 묻은 물기를 잔디[草茅]에 축축하게 적셔 불길을 끊었다. 개는 이에 힘이 다하여 죽고야말았다.
술이 깬 김개인은 죽어있는 개를 보고 또한 감동이 일었다. 슬픔을 담은 노래를 지어 부르며 무덤을 만들어 개를 묻어주고는 자신의 지팡이를 꽂아 표시를 해두었다. 지팡이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그 땅의 이름을 ‘개 무덤에서 자란 나무’라는 뜻에서 ‘오수’라고 하였다. 악부(樂府) 가운데 ‘견분곡(犬墳曲)’이 있는데 바로 이것을 가리킨다.
【역기(驛基)】
북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으며[子坐午向], 남원부(南原府) 북쪽 40리에 있다. 북쪽으로 서울까지 5백 90리이며, 북쪽으로 감영(監營)까지 90리이다. 동쪽으로 경상감영[嶺營]까지 3백 70리이며, 동쪽으로 통영(統營)까지 3백 80리이다. 남쪽으로 좌수영(左水營)까지 2백 80리이며, 서쪽으로 병영(兵營)까지 3백 리이다.
【관직(官職)】
찰방(察訪) 문관(文官) 종 6품이다. 소속된 각 역은 11개이다. 역리(驛吏) 7백 27명, 역노(驛奴) 1백 78명, 역비(驛婢) 42명, 역마(驛馬) 15마리[匹], 위답(位畓) 44석(石) 10두(斗) 6승 지기(升落), 복호(復戶) 3백 22결, 보인(保人) 3백 22명, 보솔(保率)[率] 1백 61명, 일수(日守) 10명, 인호(人戶) 3백 60호이다.
【역원(驛院)】
동도역(東道驛) 남원부 동쪽 5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40리이다. 역리 9명, 역노 10명, 역마 4마리, 위답 25석 9두 5승 지기, 복호 16결, 수미(需米) 2석 2두 1승 2홉(合), 보인 16명, 보솔 8명, 일수 10명, 인호 45호이다.
응령역(應令驛) 남원부 동쪽 2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60리이다. 역리 9명, 역노 16명, 역마 6마리, 위답 26석 15두 7승 지기, 복호 26결, 수미 1석 11두 7승 7홉, 보인 26명, 솔 13명, 일수 10명, 인호 34명이다.
창활역(昌活驛) 남원부 서쪽 2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60리이다. 역리 8명, 역노 10명, 역마 4마리, 위답 22석 16두 지기, 복호 18결, 수미 1석 14두 2승 1홉, 보인 18명, 솔 9명, 일수 10명, 인호 50호이다.
지신역(知申驛) 곡성현(谷城縣) 서쪽에 있다. 오수역에서 80리이다. 역리 25명, 역노 16명, 역비 3명, 역마 4마리, 위답 32석 13두 9승 지기, 복호 15결 52부, 수미 1석 6승 3홉, 보인 16명, 솔 8명, 일수 10명, 인호 73호이다.
낙수역(洛水驛) 순천부(順天府) 서쪽 8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1백 60리이다. 역리 59명, 역노 52명, 역비 1명, 역마 10마리, 위답 36석 15두 8승 지기, 복호 42결 74부, 수미 2석 4두, 보인 42명, 솔 21명, 일수 10명, 인호 82호이다.
양율역(良栗驛) 순천부 남쪽 1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2백 리이다. 역리 89명, 역노 20명, 역마 8마리, 위답 37석 5두 8승 지기, 복호 42결, 수미 1석 10두 1홉, 보인 42명, 솔 21명, 일수 10명, 인호 1백 56호이다.
덕양역(德陽驛) 순천부 남쪽 7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2백 60리이다. 역리 62명, 역노 23명, 역마 10마리, 위답 42석 7두 8승 지기, 복호 66결, 수미 1석 2두 6승 5홉, 보인 66명, 솔 33명, 일수 10명, 인호 1백 60호이다.
익신역(益申驛) 광양현(光陽縣) 남쪽 5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2백 10리이다. 역리 39명, 역노 47명, 역비 1명, 역마 10마리, 위답 31석 18두 5승 지기, 복호 42결, 수미 2석 8두 6승 3홉, 보인 42명, 솔 21명, 일수 10명, 인호 80호이다.
섬거역(蟾居驛) 광양현 동쪽 4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2백 40리이다. 역리 97명, 역노 29명, 역마 6마리, 위답 29석 16두 7승 지기, 복호 26결, 수미 2석 5두 4홉, 보인 26명, 솔 13명, 일수 10명, 인호 51호이다.
잔수역(潺水驛) 구례현(求禮縣) 남쪽 1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1백 30리이다. 역리 26명, 역노 15명, 역마 4마리, 위답 30석 6두 7승 지기, 복호 20결, 수미 1석 14두 4승 6홉, 보인 20명, 솔 10명, 일수 10명, 인호 80호이다.
인월역(引月驛) 운봉현(雲峯縣) 동쪽 20리에 있다. 오수역에서 1백 리이다. 역리 1백 38명, 역노 39명, 역비 3명, 역마 4마리, 위답 15석 6두 5승 지기, 복호 28결, 수미 1석 14두 3승, 보인 28명, 솔 14명, 일수 10명, 인호 45호이다.
【봉름(俸廩)】
공수위(公須位) 50결 88부
관수미(官需米) 23석 4두 5승
【조적(糶糴)】
쌀 1천 1백 88석 9두 2승
벼 12석 6두 7승
【사찰(寺刹)】
해월암(海月菴) 역터의 서쪽 사산(四山) 저라산(苧蘿山)에 있다. 아사(衙舍)에서 한 과녁[一帿] 거리의 곳이다.
1) 동주: 주(周)나라 평왕(平王)부터 난왕(赧王)까지의 시대. 낙양(洛陽)에 도읍하여 동방에 있었으므로 이르는 말이다.
2) 악묘의 도끼자루: 악묘는 남송(南宋)의 악비(岳飛)의 묘를 가리킨다. 명(明)나라 때 순안어사(巡按御史) 장경(張景)이 악비 묘의 남쪽에 서있는 나무에 ‘진충보국(盡忠報國)’이라는 네 글자를 새겨두었다고 한다.
3) 저정~즐거움: 저(滁)는 물 이름이다. 중국 안휘성(安徽城) 저현(滁縣)의 주성(州城) 서남쪽에 취옹정(醉翁亭)이란 유명한 정자가 있는데, 북송(北宋) 구양수(歐陽修)가 그 기문을 지었다. 여기서는 취옹정의 즐거움에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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