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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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따라가기/오수도(獒樹道) 오수역참(獒樹驛站)

청구도(남원부,임실현,오수역)

흘러 가는 2015. 9. 17. 20:51

청구도(김정호) 1834년 순조34년 제작

청구도(靑邱圖)는 1834년(순조 34)에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전국 지도로, 2008년 12월 22일에 3점의 청구도가 각각 보물 제1594-1호(국립중앙도서관), 제1594-2호(영남대학교 도서관), 제1594-3호(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로 지정되었으며, 청구선표도라고도 부른다. 현존하는 고지도 중 가장 규모가 크며(462*870 축척1:216,000) 대동여지도의 기초가 된 지도로 채색필사본임.

 

 -남원부와 오수역

오수역(獒樹驛): 전라좌도 오수도찰방역(전라3대역의 하나) 내용중 다소 견해차가 있을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김진영)

지금부터 182년전 제작된 청구도이다. 오수역을 중심으로한  지형 지점(地點)의 위치가 불분명하나 수계는 어느정도 일치하는것 같고 산맥은 수계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그러나 전체적인 구도는 어느정도 일치함을 알수 있고 조선후기 이지역 지형과 지명을 알수 있다.

1. 오수역의 좌측 수계는 성수산 상이암에서 발원하여 성수면을 거쳐 오수합수정이에서 오수천과 합류하는 현 둔남천이고, 우측은 장수 팔공산 아래 구름재와 계동산 골짜기에서 발원하여 산서면과, 지사면을 거쳐 흘러 내려오는 오수천이다. 둔남천의 옛지명은 남면의 평당원천과 오수역의 순천(메추래기 시내)으로 불리워 졌음을 알수 있고 또한 오수천은 "영천(寧川)"으로 표기되어 있다.


"순천(川)"의 지명은 "隅(순우)"마을 지금의 오수면 대명리 상신마을(메추래기)에서 따온 듯하다. *(메추래기 , 모퉁이우隅)


순천과 영천의 합수부 삼각주에 "순우평" 이라는 지명의 뜰은 전체적으로 보아  지금의 오수 멧골 앞뜰과 대명리 임성동 둔전뜰을 지칭하는 것 같다. 아마 순우뜰은 역둔토로 이용되었을 것이다.

2.지사면의 "구북창(舊北倉)" 남원부의 북쪽에 설치한 곡식창고로, 지금의 지사면 실곡마을이며 지금도 옛지명을 살려 북창이라 불리운다.

"서창(西倉)"은 영계면 즉 지금의 순창군 동계면 이동리에 표기되어있다. 적과면 쪽에"신북창(新北倉)"의 위치가 부정확하게 표기되어있다.

3.남원부의 "坊"이 "面"으로 표기되어 있고  "덕고면"을 "덕현면", "적과면"을 "적리면"으로 표기하였다.

4.삼계(三溪)의 표기와 함께 "리산(狸山)"의 지명이 보이는데 이는 현 오수천의 삼계석문(三溪石門)과 미산(米山)을 말한다. 미산은 쌀산 "삵산"으로 불리워지고 있어 이를 살쾡이 리(狸) 자로 표기하여 적었나 보다. 미산은 삼계면 소재지 초등학교 뒷산으로 도통암(삵산절)을 품고 있다.

5.지도에 점선으로 표기한 부분은 지역경계로 지금의 순창 동계면인 영계면, 적성진,성남면이 남원땅 이였음을 알 수있다.

6.남원의 주산인"백공산"은 장수 팔공산에서 분기하여 만행산을 거쳐 내려온 산줄기이다. 지금의 남원 롯데마트 뒷산으로 옛 공동묘지 터다.

주산인 백공산의 산세가 손님산인 교룡산 보다 빈약하여 이를 만회하고 요천으로 땅기운이 빠져 나가지 못하도록 "선원사"를 짓고 절 앞에 배맨돌 2개를 설치했다고 한다. 남원땅의 비보풍수의 대표적인 예 이다. 

7.남원땅을 가로 지르는 "요천(蓼川)"의 지명은 천변에 "여뀌 풀"이 많아 요천으로 불리운다고 한다.

 

(임실현과 전주경계)

오수역과 임실현

임실현(任實縣)은 현감이 집무하던 곳이다. 소재지는 지금의 봉황산 아래 임실읍 이도리, 성가리 일대이다.임실을 중심으로 지명표기가 다소 현재와 차이가 나고 부정확하나 지명은 신뢰성이 있다.

1.임실의 주산은 용요산(龍腰山)으로 표기 하였으며 도로인 대로의 표기를 빨간 실선으로 표시 하였고 지금의 도로와 유사하다.

북으로는 오원역을 지나  지금의 슬치재 넘어 만마관(萬馬關), 서쪽으로는 사현(沙峴) 지금의 청웅 넘어가는 모래재, 남으로는 대곡면, 남면, 남원부 경계인 오수역(獒樹驛), 서북쪽으로는 하운면과 신덕면 유점치(鍮岾峙) 넘어로 전주 경계로 가는 대로가 표시되어 있다. 

2.임실의 수계는 두만산에서 시작한 하천이 오원강으로 합수하고 진안에서 발원한 오원천이 오원역을 지나 지금의 섬진강 수계로 흘러가는 지점까지 비교적 정확하게 표기되어 있다.

3."재"와 "고개"는 "치(峙)"와 "현(峴)"으로 구분하여 표기 한점은 여느 지도와 사뭇 다르다.

사치 즉 모래재는 "사현(沙峴)"으로 북쪽 전주 경계 "유점치(鍮岾峙)"는 지금의 구이 넘어가는 경각산 아래 큰불재를 말하는 것 같고, 금당치(金唐峙)를 신흥사 쪽으로 잘못 표기 하였다. 지금의 슬치(瑟峙)는 소치(掃峙)로 표기되어있다 아마 "쓸치" 의 소리음을  쓸소(掃)자를 따서 소치로적은 것 같다. 

4.면의 위치 표기가 다소 편차가 있고 신안면을 신안으로 표기, 상신덕,하신덕면을 구분치 않고 신덕면으로 표기하였으며,상북면을 신평면 서쪽에 표기 한것은 오류가 심하다.

5.정각산(正覺山)은 지금의 경각산이고, 익산(翼山)은 날개산 즉, 지금의 순우리말로 지어진 "나래산"이다.

백운산(白雲山)은 신덕면 쪽 호남정맥인 옥녀봉 또는 한오봉의 옛 산이름이 아닌가 추정하고 싶다. 고달산(高達山)은 지금의 고덕산이며, 두만산, 백련산, 성수산 등 임실의 주요 산표기는 정확하다.

6.주요 사찰로는 신흥사, 대원사가 표기 되어있다.

7.전주 경계인 만마관(萬馬關)은 전주부성인 남고산성의 속성으로 지금의 완주군 상관면 용암리 국도 13호선을 가로 지르는 천연요새 였다.

왜적의 침략에 주로 대비하기 위해 설치한 산성을 쌓은 군영으로 호남제일관이다. 산세가 험하여 가히 말 일만여두를 감추고 지낼수 있다하여 "만마도관"이라고 한다. 전주성 남쪽에 있다하여 "남관" 남관의 윘쪽에 있다하여 "상관" 모두 만마도관과 관련된 지명이다. 노구암은 용암리 산정마을의 옛 이름이다.

고종10년에 설치된 "남관진"은 건물이 100여채에 달했다고 한다. 지금은 남관초등학교 4거리 신호등 건너편 국도변에 "남관진비"가 서있다.

 

(청구도-1834년(순조34년), 영남대학교 소장본)

(임실,오수역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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