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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溪先生文集 (옥계선생문집)玉溪先生文集 續(옥계선생문집 속)

흘러 가는 2020. 11. 24. 22:17

자 료 명

옥계선생문집 (玉溪先生文集)

옥계선생문집 속 (玉溪先生文集 續)

연대/시기

조선후기/ 문집 1873년 추각본

/ 속집 1873년 초간본

발간/저자

/ 노진(盧禛 1518~1578)

책수/규격

문집 3(2.3.4), 1책 없음 / 20.9cm×31.3/ 목판본

속집 2책 완질 / 20.9cm×31.3

*문집 총 74, 속집 42

소 장 자

흘러가는

 

옥계선생문집은 74책 목판본으로 아들 염()이 유문을 수집하여 간행했는데, 전란으로 판본이 유실되자 손자 척()1632(인조 10)에 증보하여 중간한 것을 1873년 추각하여 간행했다. 책머리에 정온(鄭蘊)이 쓴 서문, 총목, 옥계선생세계, 연보가 차례로 있다.

 

옥계선생 속집은 42책 목판본으로 1873년인 계유년에 기정진과 이상익이 발문을 붙이고 말미에 송병로가 근서하여 신간하였다.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은 조선 중기 명종과 선조 연간에 주로 활약한 문신으로, 지례현감과 전주부윤 등 외직에 나가서는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로 뽑히기도 하였다.

노진은 1518(중종 13) 함양군 북덕곡 개평촌에서 태어났으나 처가가 있는 남원에 와서 살았다. 효심이 뛰어나 노모를 봉양하느라 지병이 악화되어 1578년 향년 61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다. 처는 사재당 안처순의 딸이다.

1537년 생원시, 1546(명종 1)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승문원 박사가 되었다. 1560년 형조참의와 도승지가 되었는데, 노모의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지원하여 담양부사와 진주목사를 지냈다.

1567년 충청도관찰사와 전주부윤을 내직인 부제학에 임명되었다. 1571년 다시 외직을 청하여 곤양군수가 되었고, 이듬해 대사간·이조참의가 되고, 경상도관찰사·대사헌 등을 지냈다. 1575년 예조판서에 올랐으나 사퇴한 후 신병을 이유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평소에 남명(南冥) 조식(曺植),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등의 학자들과 도의(道義)로써 교유하였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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