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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따라가기/지역문화관광유산

박노규 준장

흘러 가는 2015. 8. 7. 11:21

국가보훈처와 오수면에서는 박노규 준장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전주남원간도로(춘향로)

남악 갈마간 선형도로공사 구간내 평교를 "박노규 교"로 명명하고 또한 적의의 장소를 선정하여

장군을 기리기위한 소공원을 조성하고자 각고의 노력을하고 있다.

박노규 준장은 오수면이 고향으로 기록되어있다.



오수면 오수리에 조성된 소공원과 박노규 장군 흉상(2016년 6월 건립 제막)



 

 

1918년 3월 14일 전북 임실군 둔남면에서 출생한 박노규(朴魯珪) 준장은

 

편부 슬하에서 소학교를 겨우 마칠 정도로 극빈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과묵한 성격에 인내심이 강했던 그는 결코 가난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한 학생이었다.

 

소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일본이 패망하자 국군에 자원할 것을 결심하였다.


1946년 11월 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생으로 졸업과 동시에 육군 참위(소위)로 임관되어 10216의 군번을 부여받았다.

 

당시 재임하고 있던 재정관보다는 일선 지휘관으로 활동하기를 원했던

 

박노규 대위는 제4연대 작전주임장교로 취임한 뒤 곧이어 발생한

 

여.순 10.19사건을 진압하기 위해 1개 연대 병력을 이끌고 현지에 참전하였다.


순천을 탈환하고 여수로 진격, 목표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오른쪽 어깨에 부상을 당해 1개월간 병원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후 육군사관학교 교무처장을 거쳐 1949년 6월 수도경비사령부 작전참모로 전보된

 

박노규 소령은 1950년 1월 옹진전투사령부 작전참모로 옮겨 6.25전쟁을 앞두고 불법 도발을 강행했던

 

북한군과 수 회에 걸쳐 전투를 전개하였다.


그 중 하나인 은파산전투를 마치고 육군보병학교 고등군사반에 입교하여 현대전술에 대한 연구를 하던 중 5

 

월 1일 육군중령으로 진급하였고, 아울러 홍천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연대 부연대장에 보직되어 6.25전쟁에 나서게 되었다.


남아로서의 진정한 용기와 상관으로서의 숭고한 부하애 및 인간애를 동시에 지녔던

 

장군은 이화령전투에서 전사한 김용하(金鎔河) 대위의 시신을 손수 등에 업고 싸우고, 또 후퇴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어용산전투에서는 사살한 적군의 시체 1,000여 구를 모두 묻어주는 인간애를 발휘하기도 하였다.

 

조림산전투에서 부상으로 병원에 후송될 때에는 “부상을 당해 더 싸우지 못해 조국에 미안하다.

 

그러나 곧 완쾌되어 전선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정도로 책임감이 투철한 지휘관이었다.


정부는 박노규 대령의 살신보국과 임전무퇴의 정신을 귀감으로 삼고자

 

1951년 4월 27일 태극무공훈장(훈기번호 제2호)을 수여하였고, 동시에 육군준장으로 추서하였다.

 

현재 장군의 유해는 서울 동작동국립현충원 장군묘역 1-47에 안장되어 있다.(금오산작은거인 블로그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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