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치(熊峙)
현의 서쪽 55리 신덕면 양발리(梁鉢里) 서북쪽에 있고 완산경계와 접한다. 대화치(큰불재)에서 뻗어왔고 완산과 임실로 넘나드는 재(嶺)이다.
*답사결과
- 위치: 임실군 신덕면 삼길리 내량마을
- 웅치(322m)는 일명 곰재, 또는 염암치(鹽巖峙) 즉 소금바위재라 불리며 호남정맥 박주지산(518m) 남쪽에 있는 재이다. 임실군 신덕면 삼길리 내량마을과 완주군 구이면 계곡리 염암마을을 연결해 주던 고개인데 지금은 묵혀서 그 흔적만 남아있다.
웅치는 임실, 순창 등 전라도 남부지방 여러 고을에서 전라감영이 있는 전주와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나들었던 전라좌우도의 중간 길목이다. 곰재의 지명은 곰터골과 곰독골이 있어 지명을 얻었다고 하며, 곰재를 사이에 두고 신덕면 내량마을 하천가에 양발리시장(梁鉢里市場)이 열렸었고, 구이면 염암마을에는 객점들이 들어서 있어 길손들이 쉬어가던 곳이라 전해온다. 특히, 신덕과 구이에서는 웅치, 곰재, 염암치, 소금바위재, 소곰바위재 등 서로 다른 듯 같은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내량마을 곰재 아래에는 곰터골이 있고 염암마을 소금바위재 아래에는 곰독골이 있는데, 골짜기 길목 한켠에 큰 바위가 있다. 마치 그 모양새가 소금덩어리를 쌓아 놓은것 같아 소금바위, 소곰바위, 큰곰 한마리가 입을 벌린 형상을 하고있어 곰바위, 흰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아 한개바위, 하얀개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 다산 정약용이 18세(1779) 때 부친이 화순군수로 재직 당시에 과거시험을 보러 고향인 당시 경기도 광주군 소내(苕川)로 가기 위해 순창을 거쳐 염암치 넘어에 있는 객점에 묶으며 그가 소회하며 남긴 “행차염암(行次鹽巖)”이란 시가 여유당 전서에 전해온다. 다산이 묶었던 염암 협곡 안 객점이 바로 이곳 소금바위재 아래에 있는 염암마을 곰독골이다.
- 내량마을 박종호 어르신께서 예전에 곰재는 여러 고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었던 큰 재라고 하며, 곰터골 등 주변의 지명 설명과 함께 길 안내를 해주시면서 곰재나 소금바위재나 같은 곳이라고 전해준다.
- 염암마을 이상문씨께서 소금바위에 동전을 던져서 바위에 얹히면 득남을 하고 굴러 떨어지면 득녀를 한다는 설화가 전해온다고 한다. 소금바위 아래에 청룡암 소금바위 굿당이 있는데 득남 득녀를 바라는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이루어주는 곳이라 한다. 또한 구이면 염암과 염신(鹽腎)마을은 본래 한동네 였는데 큰 도로가에 새로 생긴 마을과 염신마을이 합쳐지면서 신기(新基)마을로 독립 분리했다고 한다. 염신마을 검산(劍山)도로가에 있는 바깥소금바위는 수컷을 의미하고 염암마을 곰독골 안소금바위는 암컷을 의미한다고 한다.(흘러가는 김진영)
行次鹽巖
(행차염암) 염암에 머무르며
峽裏鹽巖店, 村扉傍水齊。 협곡 안 염암 객점에 이르자
(협리염암점, 촌비방수제.) 촌마을 사립이 물가에 나란하다.
酒漿開小市, 書畫似幽棲。 술과 국 파는 가게 두서넛
(주장개소시, 서화사유서.) 그림과 글씨가 그윽한 이 땅과 어울리네.
石翠濃堪挹, 溪流嬾欲提。 비췻빛 돌은 색이 진하여 손에 쥐기 알맞고
(석취농감읍, 계류난욕제.) 시냇물은 빛깔 고와 움키고 싶구나.
客牀眠得穩, 到曉不聞雞。 나그네 침상에 편안히 잠들어
(객상면득온, 도효불문계.) 새벽 되어도 닭 울음소리 듣지 못해라.
[네이버 지식백과] 염암에 머무르며 [行次鹽巖] (여유당전서 - 시문집 (시) 1권, 심경호, 박석무, 송재소, 임형택, 성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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