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덕유능선

역사문화 따라가기/지역문화유적탐방

이웅재고가(춘성정 고택)17.7.7.금

흘러 가는 2017. 7. 7. 18:48

- 춘성정 고택인 이웅재고가는 1500년대 효령대군 증손자이신 춘성정 이담손 선생께서 현 오수면 둔덕리 동촌마을에 터를 잡고 낙향하여 지은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양반 가옥이다. 장방형 터에 ㄷ자형 안채, 안행랑채, 사랑채, 사당, 대문채로 구분되어 있다. 여러번에 걸쳐 중수한 고택은 17세 종손의 이름을 따 이웅재 고가로 1977년 12월 31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2호 지정받아 오늘에 이르며, 현재 18세 종손인 이정*씨가 기거하며 관리를 하고 있다. 마을 중앙 언덕배기 정남향 아늑한 터에 안채와 부속 건물이 조화를 이루며,특히 사랑채는 5층 기단석을 쌓고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어 한층 멋을 돋구었다.


이웅재고가 안내판

정갈하게 단장된 고택 골목 입구

 대문채 ~ 효자정려문 (1870년(고종7년) 고종이 하사한 효자정려문)

(유명 조선효자 증 통정대부 이조참의 이문주 지려)

정려문 위 홍살문과 부채살 모양의 안 서까래가 이채롭다

1623년(인조1년)에 태어난 이문주는 춘성정의 5세손으로 할머니와 친부모 및 양부모 모두를 지극정성으로 모신 효자로 시묘살이 중 여막에서 건강 악화로 효종8년 1657년 35세 나이로 요절하였다. 효자(용성지)로 후세에 널리 귀감이 되어 고종7년 1870년에 이조참의로 증직되고 효자 정려문이 하사 되었다. 이문주의 사위가 최계옹인데 구로회 삭녕인 최휘지의 아들로 병자호란때 남한산성으로 인조를 호종한 좌승지와 예조참의를 지낸 최연의 손자이고, 봉림대군(효종)의 왕자사부를 지낸 최온의 조카 손자이다.. 최계옹은 사헌부 장령을 거쳐 동지사 서장관으로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오기도 했으며 지방관으로 제주목사를 지내기도 했다.

대문채 하마석(말을 타고 내릴때 쓰이는 돌)

사랑채에서 바라본 대문채(광방 창고와 외양간, 농기구 창고)


사랑채 전면 4칸 맞배지붕(두칸의 방과  두칸의 대청마루)

사랑채는 5층 기단(축대)위에 지어졌는데 일반 양반 사대부가의 3층 기단보다  2개층이 더 많다. 이는 왕명으로 지은 집이기에 격조가 높아 그렇다 한다. 생각보다 토방이 좁고, 앞뒤 좌우측 모두 바깥 기둥에 까치발을 대어 맞배지붕의 무게를 견디도록한게 특이하다.

사랑채 마당에서 본 동쪽 안행랑채 바깥...

아궁이 위 공루 행랑 방과 연결되어 있다.

서편 행랑채(디딜방아, 창고)

손잡이를 잡고 발로 굴러 찧는 디딜방아

행랑채

안채 정면

서편 안채 방과 아궁이 책방(공루)

동편 안채 방

안채 뒷편

동편 안채 옆 우물가

돌 화로


동쪽 중문(사랑채 뒤켠과  사당채로 연결)

중문(안채에서 상당과 사랑채 뒷뜰을 거쳐 동문 밖으로 출입하는 통로)

춘성정사 사당채(춘성정 위패가 모셔진 곳) 기단 5개층

춘성정사 현판

동문(안채에서 사랑채 뒷켠을 거쳐 동문으로 나가는길)

사랑채 내부

사랑채 대청마루와 대문채

안 행랑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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