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료 명 |
운학선생문집 (雲壑先生文集) |
연대/시기 |
조선후기/무술년/1898년/ |
발간/저자 |
임실 덕치 조재홍/ 운학 조평(趙平 1569~1647) |
책수/규격 |
2책(권지7~권지11)부록1책(권1~권5)/ 목판본/20.8cm×30.7 총3책 중 1책(권지1~권지6) 없음 |
소 장 자 |
흘러가는 |
설명 |
○ 무술년(1898)에 은진 송병로와 족손 조성희가 서문을 쓰고, 송사 기우만 선생과 후손 조재홍이 발문을 붙여 원집 11권 2책, 부록 5권 1책 총 3책으로 간행하였다.
○ 원집 2책에는 선생께서 생전에 쓴 각종 서문과 기문, 제문, 비갈명, 행장을 수록하였으며,
○ 부록 1책에는 선생의 행장과 갈명, 제문, 축문, 설보비명, 척록, 선생의 년보를 기록하고 문집을 펴낸 발문을 적었다.
○ 선생의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형중(衡仲), 호는 운학(雲壑). 함안 출생으로 임진란때 임실 덕치로 이거하여 살았다. 정구(鄭逑)·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1609년(광해군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광해군의 실정으로 벼슬을 단념하고 성리학과 예학(禮學)에 주력하였다. ○ 1624년(인조 2) 학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황산찰방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이어 정사원종공신(靖社原從功臣)의 녹권(錄券)을 받았으며 1627년 세자익위사세마를 거쳐 사근도찰방으로 옮겼다. 그 뒤 제원도찰방을 지내고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제원찰방으로 있을 때 군수 김성발(金聲發)과 협력,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순절한 칠백의사총(七百義士塚)을 수리해 오단(五壇)으로 만들고, 조헌(趙憲)·고경명(高敬命) 등을 봉향하고 제문을 지어 칠백의사의 충혼을 위로하였다.
○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초모도유사(招募都有司)로서 노등(盧縢)·이두연(李斗然) 등과 함께 의병을 소집하고 군량미를 모아 여산(礪山)의 의병소에 조달하였다. 1639년 고향인 덕치(德峙)에 설보(雪洑)를 쌓고 장장 20리의 수로를 개척, 황무지인 들판 수십만 평을 옥토로 만들어 주민들이 그 공덕을 기려 비를 세웠다.
○ 만년에는 회문산(回文山)밑에 문덕당(文德堂)과 삼구재(三求齋)를 짓고 후진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도학과 문장이 당세에 뛰어나 학행으로 학정서원(鶴亭書院)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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