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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군 일제강점기 신사 현황

흘러 가는 2017. 3. 23. 20:26

신사 참배 [神社參拜]

일제 강점기, 일제가 우리의 종교와 사상, 자유를 억압하기 위하여 곳곳에 신사를 세우고 참배할 것을 강요하던 일

 

한국에서의 신사참배 실시와 황민화정책

일본인 거류민을 대상으로 국내에 처음 들어온 신사제도는 조선총독부가 설치되면서 한국인들에게 덴노제 이데올로기를 주입시키는 기반으로 확대되었다.

 

총독부는 1915'신사사원규칙'(神社寺院規則)1917'신사에 관한 건'을 잇달아 공포하여 한국에 들어온 모든 신사의 정비와 증대를 꾀했다. 이를 기반으로 1925년에는 조선신사가 조선신궁(朝鮮神宮)으로 개칭되었다. 1929년 세계대공황으로 위기에 직면한 일본경제는 그 탈출구로 대륙진출을 꾀하면서 1931년에는 만주를 침략했고, 이어 1937년에는 중일전쟁을 감행했다.

 

이런 대륙침략정책이 추진되면서 이를 밑받침하기 위해 내선일체를 표방한 황민화정책이 강력하게 추진되었는데, 신사참배는 그중 가장 기본적인 정책이었다.

 

1930년대 중반부터 국민의 사상통제가 본격화되어, 신사 중심으로 애국반이 편성되고 신사 참배, 궁성요배, 국기게양,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제창, 근로봉사의 월례행사가 강요되었다. 또한 각 가정에 신붕(神棚) 설치, 신궁의 부적 배포가 강제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경찰 안에 감시대를 조직하고 애국반 안에 밀정조직을 만들어 이를 감시하게 했다. 한편 19368월 신사제도 개정에 대한 칙령이 발표되어 황민화정책의 상징으로서 신사제도가 행정구역별로 재정비·신설되었다. 이에 따라 1936년에 524개였던 신사가 1945년에는 1,062개로 급증했다. (다음백과 참조)

 

우리나라 최초의 신사는 1899년 세워진 부산의 용두산 신사이며, 전라북도에는 1902년 군산 월명공원 동국사 부근에 최초로 설치됐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11신사 11신사 설치를 장려했다. 이로 인하여 임실군 12개면에 1~2개의 신사가 보통학교 구내 또는 면소재지 내 높다란 동산에 설치 되었다.

 

   

임실군 일제강점기 신사 설치 현황

(2017.3.23. 현재)

연번

읍면명

설치장소

주소

이용사항

사용실태

비고(흔적)

1

임실읍

임야 동산

이도리 851

3.1동산

공원

입구계단

2

지사면

보통학교

방계리 655-1

지사초등학교

면학탑

 입구계단

3

지사면

(동산)

방계리 593-5

매실식재

  1945년 7월 부지조성 후

 폐망 

4

오수면

임야 동산

대명리 산93-1

신포정 위

설치물 기둥

구조물 잔해

5

관촌면

임야 동산

덕천리 산39-1

임야,

사선대

콘크리트 구조물 잔해

6

삼계면

임야 동산

삼계리 산39-1

임야

임야

 

7

청웅면

보통학교

구고리 111

청웅초등학교

화단

 

8

강진면

보통학교

갈담리 347

갈담초등학교

운동장

 

9

강진면

보통학교

옥정리 233-8

옥정초등학교

(폐교)

화단

폐교

(치즈체험장)

10

덕치면

보통학교

일중리 221

덕치초등학교

화단

  입구계단

11

덕치면

보통학교

사곡리 401-33

사곡초등학교

(폐교)

사유지

요양병원

 

12

성수면

면사무소

양지리 687-5

. 면사무소

사유지

개인주택

 

13

신평면

보통학교

원천리 139

신평초등학교

놀이터

 

14

신덕면

보통학교

수천리 840

신덕초등학교

이순신

동상

입구계단

15

운암면

보통학교

입석리 56

.운암초등학교

옥정호

수몰

 

15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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