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비산비야 非山非野!!

역사문화 따라가기/지역문화유적탐방

치마대(馳馬臺)와 말무덤, 시락전(矢落田)

흘러 가는 2022. 2. 15. 18:04

○치마대

  진전방(眞田坊) 팔공산 기슭에 있다. 서쪽으로 뻗어 대(臺)를 이루고 있다. 이름하여 약산(躍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세상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장군 최형(崔瀅)이 나성부원군(羅城府院君) 오자치(吳自治)의 사위가 되어 평상시 이 곳에서 말타기와 활쏘기를 익혔다. 그는 매번 한 개의 화살을 쏘아 놓고 말(馬)에게 화살을 좇차 뛰어가게 하였는데 화살과 말이 같이 도착하였다고 한다. 하루는 말보다 화살이 먼저 이르렀다.  장군은 그 말이 화살에 미치지 못하였다고 하여 말의 목을 베었다. 그런데 이미 말의 목을 베어버렸는데 그 때야 화살이 이르렀던 것이다. 최형은 후회(後悔)하고 그 말을 이 대 아래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 말 무덤이 있다.(남원용성지)

○시락전

 지사방에 있다. 최형 장군이 일찌기 치마대 위에서 활로 화살을 쏘았다. 그 화살이 떨어지는 곳을 잃어버렸는데 농부(農夫)가 화살을 주워 가지고 왔다. 화살이 떨어진 곳은 쏘는 곳으로 부터 10리 거리에 있었다. 뒷 사람들이 이에 그 밭의 이름을 시락(矢落)이라 하였던 것이다.(남원 용성지)

 

※ 나성부원군 오자치(1426~?)는 조선초기 무신으로 이시애난(세조13년 1467)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2등, 나성군(羅城君)에 책록된 인물로 나주오씨이며 국립고궁박물관에 그의 초상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 조선초기 최형(崔瀅)장군을 고려말 최영(崔瑩)장군으로 곡해하여 이야기가 잘 못 전해지고 있다. 

    최형장군은 산서면 오성리 통천최씨 최윤덕장군(관곡서원 주벽배향(임실지사), 오성리 부조묘)의 후손으로 비정된다. 

※ 말무덤은 경지정리로 인해 원래 모습은 찾아볼길이 없고 그 터만 남아 있다.

※ 인근 장수군 산서면 초장마을에 사는 한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화살을 쏘았던 곳은 칠봉산 제3봉이라고 전해온다고 한다. 즉 치마대는 칠봉산으로 비정할 수 있겠다.

※ 시락전의 정확한 지점은 특정되어 전해 지지 않아 찾기가 어렵다.

남원 용성지 고적조(1752)
말무덤 터 위치도
말무덤 터
말무덤 터 ~ 근현대에 들어 말무덤 주변을 개간하여 논으로 사용하고 있고 그 터에 기다란 막대기로 표시만 해놓았다. 농로를 경계로 좌측은 장수군 산서면이고 우측 말무덤쪽은 임실군 지사면 관기리이다. 농로를 기점으로 좌우가 군의 경계이며 이길 끝에 암가(바웃거리)마을이 지척에 있다.
말무덤에서 바라본 칠봉산 치마대~ 주민 증언에 의하면 어렸을 적 제법 너른 벌안에 봉분이 잘 갖추어진 말무덤에서 뛰어 놀았었는데 객지 생활후에 귀향해 보니 경지정리로 말무덤이 사라지고 그 흔적만 남아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한다. 그리고 칠봉산은 일곱개의 산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인데 그 중 제3봉에서 활을 쏘았다고 전해온다고 한다.
뒷쪽 골짜기 산아래가 초장마을이다. ~ 좌로부터 칠봉산, 오봉산, 영대산 전경
말무덤 뒤로 멀리 팔공산과 가운데 비행기재 우측 개동산(묘복산) 전경
말무덤은 온데간데 없고 그 터에 막대기만 세워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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