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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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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따라가기/지역문화유적탐방

흔들바위와 서방바위

흘러 가는 2019. 7. 30. 14:56

[흔들바위와 서방바위]


한줄기의 바람에는 흔들려도 수십명 장정이 밀어도 흔들리지 않은 신기한 바위시집 못간 슬픔에 못이겨 비명에 간 시골처녀의 애닯은 사연이 담긴 이 바위는속칭 흔들바위라 하는바, 이 바위는 오수면 오암리 한암마을 매봉에 있다.

매봉은 오수에서 4km의 거리에 해발 608m 가 되는 산의 중턱에 높이 5m 폭이3m 의 바위가 곧 흔들바위이다.

멀고 먼 옛날 양터라고 부르는 이 곳 마을에 양장사(楊壯士)가 살았다.

그는 어려서 부모를 다 잃고착하고 예쁜 누이동생과 단 둘이 의지하며 살았다.

어느듯 누이동생이 18세가 되어 결혼하기를 희망하므로 양장사는 이웃 마을

총각과 춘삼월에 성혼키로 약혼을 허락하고누이동생의 혼수감을 마련키 위해 더 열심히 일하였다.

누이동생이 시집가는 마을의 시냇울에 정검다리를 놓았는데그는 힘이 장사인지라 집더미

같은 바위를 혼자서 공 굴리듯 하여 훌륭한 징검다리가 놓여졌다.

그러다가 혼인을 수 개월 앞두고 전쟁이 터지니 오빠는 군대에 뽑혀 가고 말았다.

양장사는 전쟁을 빨리 마쳐 큰 공을 세우면내년 3월 안에 꼭 돌아온다. 하고 귀여운 누이

동생과 헤어져 그길로 군문에 들어가니싸움은 좀처렴 끝나지 않고 어느듯 2년이 지났다.

누이동생과 약혼한 이웃마을 총각은 기다리다 못하여오빠가 오지 않더라도 혼례식을 올리자 하였으나 처녀는 거절하였다.

누이동생은 이후로 날만 새면 매봉에 올라가 흔들바위 위에 우뚝 서서아득한 남쪽하늘을

바라보며 오빠를 기다리기 또 1년이 지났다.

그러던 중 총각은 기다림에 지처 마침내 딴 처녀와 결혼하고 말았다.

누이동생은 침식을 잃고 피를 토하며 흔들바위를 올라가 오빠를 기다리는데몇 일 후에는 기진맥진하여 바위 위에 쓰러져 죽었다.

전쟁을 승리하여 많은 공을 세우고 양장사가 돌아왔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소식을 들은 揚壯士는 누이가 쓰러져 죽은 바위를 내리치며 몇 날을 애통해 마지 않았다.

이때 양장사가 바위를 내리친 바람에그 큰 바위가 두 동강이로 금이 났다.

오빠는 누이동생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바위의 맞은편에 큰 바위를 들어 앉히고그 바위에 사모관대 모양의 바위를 얹어 서방바위를 만들어 주었다.

양장사가 내리쳐 금이 간 바위는 이후로 바람만 불면 저절로 흔들거리는데이것은 마치 맞은편에 오빠가 만들어 준 서방바위를 손짓하는 것 같기도 하고슬퍼서 몸부림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을사람들은 이로부터 바위를 흔들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나바위가 굴러 떨어지면 위험하므로 사람들이 동원되어 흔들바위를 밀어뜨리려 하였다.그러나 한 오라기 바람에도 흔들거리는 바위이건만 수 십명 장정들이 아무리 힘을 주어도 꼼짝을 않을 뿐 아니라매봉 위에 갑자기 검은 구름이 일더니 삽시간에 뇌성벽력 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사람들은 놀래어 바위에 큰 절을 하고 물러섰다 한다.(임실군지1977)

 


흔들바위 모습

좌우로 크게 4동강난 바위 중 좌측 위 바위가 흔들바위다.

뒤쪽으로 올라서서 깨진 바위를 손가락으로 밀면 가볍게 흔들린다.

 조계종 응봉 연불원 법당에서 스님께서 수도를 하고 계신다. 

흔들바위 건너편 사모바위(신랑바위)는 숲이 우거져 있어 접근하기가 어려워 동절기에 답사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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