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비산비야 非山非野!!

기록사진첩/지역사진첩

관촌 사선대 옛 모습!!!

흘러 가는 2020. 2. 18. 13:19

[사선대 四仙臺] 운수지(경술년,1730년)

 고을의 북쪽 성산(城山)아래 산사면에 있다. 그 형상이 마치 코를 닮았다. 코바우(鼻巖)는  큰강가 웅덩이에 있고 물길이 바위 아래로 돌아 흐르는데 맑은 모래가 끝없이 펼져진다. 바위 앞의 모습이 승경이다. 현감 신계징(申啓澄)이 이 곳에 와서 놀았는데 , 감상하기를 끝이 없었다. 그는 사선대로 이름을 고치고 돌아갔다.


* 현감 신계징: 임실현감 으로 신해년(현종12, 1671.2)에 부임하여 을묘년(숙종1, 1675.2)에 임기를 마침, 오수면 주천리 삼계서원에 배향된 인물


[관촌 사선대] 1910~20년대

관촌 사선대 물레방앗간(1910~20년대)

섶다리 넘어 산 기슭

활사장 과녘은 굳세어 보이는데

그 옛날  궁사는 어디로 갔는가?

검정치마 흰무명 적삼에

 그림자 드리운 강가에서

 갱조개를 줍는 아낙네여!!

 허리펴고 여기 좀 돌아보오!!~~~

덩더꿍! 덩더꿍!! 

 돌고도는  물레방아야~~

지금 너는 어디에서

 덩더꿍!!~~

속절없이 돌아가고 있느냐!!!~~


[사선대 호수]1910~20년대

일제강점투쟁기 전라북도 관촌면 소방조 기념사진

 관촌 수방단!

 사선대에서 수상훈련을 마치고 검게 그을린 모습으로

단체 기념촬영을 한 모습이 이채롭다.


(일제 소방관제)

1910년 9월 29일 총독부관제를 공포해 10월 1일부터 총독제를 실시했다. 경찰기구는 1910년 6월 설치한 경무총감부제를 통합 후에도 그대로 시행했고 소방도 경무총감부에서 관할했다. 중앙에서는 소방업무를 경무국 내 보안과에서 분장했고 지방에서는 1919년 경무 총감부가 총독부 경무국으로 개편됐다. 이후 경무국 기구개편에 따라 일부 조정이 있었다.

소방조는 한일합방 이전부터 일본인들이 거류하게 되면서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임의단체로 조직·운영해 오다가 후에 각 지역의 일본영사관 규칙으로 소방조 규칙을 제정·시행해 공설조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한국인 사회에서도 이를 본받아 한국인만의 조직으로 또는 한일 공동조직으로 소방조를 설치했다. 소방조 조직은 내선일체 정책을 실시하는 한 수단으로 전국 각지에 조직돼 1914년 말에는 635개 소방조에 조원 수는 56,567명이었다.

경방단 설치는 부·읍·면 구역 단위로 설치하는 것이 원칙이며 소방조의 설치구역과 같다. 경방단 소방부는 경찰서장 또는 소방서장의 지휘를 받아 평시에는 수·화재, 전시에는 공습에 의한 화재를 경계·방어해 이로 인한 재해를 방지하게 했다.(평택시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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