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련사(勝蓮寺)는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2675~90(산동면 식련리) 만행산 연화봉(527.9m)아래에 자리 잡은 사찰로 고려후기 대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1328~1396)의 승련사기(1364)에 의하면 처음 금강사(金剛寺)로 창건되어 궁궐의 내원당에 홍혜국사(弘慧國師)가 내려와 주석했으나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후 홍혜국사의 제자인 졸암 연온대사(拙菴 衍昷大師,? ~1358년)가 크게 중창하고 절 이름을 승련사라 하였다. 그리고 1363년 여름에 각운선사(覺雲禪師)가 절 둘레에 담을 쌓아 대사찰로 마무리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불교가 위축되어 언제 폐사되었는지 알수 없으나 조선 중기인 숭정(崇禎) 14년(1641) 경진년 가을에 철오(哲悟), 처은(處誾) 두 스님이 남들이 하기 어려운 발원을 세워 성금을 모으고 터를 닦아 옛 기초 위에 기둥을 세워 중앙에 우뚝 넓게 무량불(無量佛)을 모신 전각(殿閣)을 좌우에 승려들이 경문을 강론하는 당(堂)을 만들었으며, 1650년 10월에 대장경과 함께 삼존불상(三尊佛像)이 조성 봉안되는 등 오랜 세월 가람의 면모를 유지하다가, 언제 어떠한 연유로 사찰이 퇴락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고 대장경과 삼존불상은 진안 마이산 금당사로 옮겨져 봉안 되었다. 현대에 들어와 경훤 스님이 여러 신도들과 힘을 합쳐 폐허가 된 옛 터에 승련사를 중창하고 대웅전(1986)과 관음전, 요사채(1990)를 건립하여 비구니 선 수행(禪修行) 도량으로서 면모를 갖추고, 제자 일공스님이 뜻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도 사찰주변에서 고려청자편과 조선백자, 분청사기편, 기와편들이 출토되고 있고, 서쪽 삼성각 뒷편 바위면에 불정심인(佛頂心印)과 육자진언(六字眞言)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선 수행과 더불어 밀교 신앙을 보여주는 보기 드문 사례로 보존가치가 아주높은 문화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다. (참조자료: 승련사 역사안내문, 풍거집 승련사기 등 )2024.5.3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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