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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두정(龍頭亭)과 용두암(龍頭岩), 오암대(鰲岩臺)

흘러 가는 2017. 12. 11. 21:29

[용두정, 용두암] - 오암대

-소재지: 임실군 오수면 오암리 2번지(오촌마을)

-관리자: 청주한씨 종중(봉천리 봉산마을)

-용두정: 1949년에 원기당(元氣堂) 한종연(韓鍾淵)이 근기하여 한상연(韓尙淵), 한재연(韓在淵)이 감역(監役)을 맡아 건립 하였다. 원기당 한종연은 냉천 마을 뒤 말치재 중턱 도로변 "오노유상대(五老 遊裳坮)" 암각서에 새겨진  다섯 노인 중 한분으로 청주한씨이다. 정자는 70년쯤 되었고, 잘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정면, 측면  각 두칸으로 팔작 지붕 무실 정자이다.  최근에 들어 지붕을 강판으로 덮어 씌웠다.


- 용두정이 있는 용두암은 사람들이 일명 "용머리"라 부르는데, 이는 산아래로 툭 튀어나온 큰 바위가  마치 용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그리 불리운다.  산아래 큰 바위는 형상이  마치 용의 아가리 처럼 움푹 패여 있다. 아가리 속에는 용의 혀 처럼 뾰족한 암석이 튀어나와 있어 신비감을 자아내는데 입담으로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용의 성기라고도 한다.  용두암 위 널직한  봉우리에는 청주한씨 鰲巖공 五相(오상)과 공부인 풍산심씨 합배묘소가 있으며, 주변이 툭 트여 사방팔방 경치가 뛰어나다. 


- 임실 운수지(1730년)누정조에 남면 20리 쯤에 鰲岩臺(오암대)가 있는데, 일명 戀君臺(연군대)로 불리우며, 백헌 이경석과 현감 최천서의 시문이 있다고 소개되어 있으나  훼철되어 없고 묘터로 남아 있다. 묘지는 오암대의 주인 오암 한오상(효종5년,1654~경종2년,1722)과 공부인을 모셨으며 그 후손들이 그 아래에 용두정을 건립하여 선대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 용머리는 호남금남정맥 장수 팔공산에서 발원한 성수지맥이 봉화산을 일구고 남진하며 내려가다 오촌마을을 감싸며  동북향 으로 여리게 가지친 산줄기로  평당원천이라 불리웠던 둔남천 아래에 맥을 멈춘다. 이곳이 바로 용두정이 있는 용두암으로 전면에는 너른 봉천들이 펼쳐지며 멀리 고덕산과 내동산이 바라다 보인다. 한때 인근 봉천초등학교(1998년 폐교)와 오수서초등학교(1997년 폐교) 학생들의 단골 봄,가을 소풍지로 각광 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출신 이라면 너나 없이 한줌의 추억이 고스란히 서려있다해도 과언이 아닐성 싶다.


- 흐르는 세월속에 평당원천(둔남천) 물줄기가 휘돌아 나가던 용두정 아래 넓고 깊은 연못은 70~80년대 임실군 최초로 시행했던 봉천들 경지정리로 인해 메워지고 채워져 그 모습을 잃은지 오래이다. 자라울에서 말치재로 오르던 신작로가 폐쇄되고  전주~ 남원간 포장도로가 이곳으로 우회 하면서, 어찌하여 둔남천~ 용머리 능선 고갯길이 끊겼다. 이로인해 인적이 드물어 지면서  칡넝쿨과 잡목이 우거져 접근 조차 하기어렵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 본다면 옛날처럼 아름다운 자연풍광은 덜하지만 그래도 노송아래 의연히 자리한 용두정과 용두암은 우리를 반기며 잊혀져가는 옛 사람들의 추억을 회상케 할 것만 같다. 


청주한씨 "용두정" 표지석

(용두정)

용두정 건립기문


청주한씨오암공과 공부인 묘소


오암대가 적혀있는 비문

용머리 에서 바라다 보이는 곳

용두정과 용두암 - 오암대 전경

용두암과 용두정(우측)


도로변에서 바라본 용두암

용두암 동굴(아가리) 가운데 뾰족한 돌뿌리 신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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