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의 자동차가 마치재를 넘어오고 있었다.
무기를 잔뜩 실은 이스스 트럭 이었다.
박종수 둔남면 특동대장이 박세경 추진위원과 함께 대구까지 가서 무기를 구입해 가지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임실군 내에서는 1천7백정의 무기를 사들였다.
엠원 소총이 한 정에 1만2천원이었으며, 카빈이 한 정에 7천원, 권총이 3만5천원, 아세보총이 3천원 이었다.
임실군에서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서 무기를 구입하여 각 면의 특동대의 완전무장을 서둘렀다.
도처에서 빨치산들이 준동하기 때문에 대원들의 무장은 시급한 문제였다.
무기를 산재한 트럭은 농업협동조합의 차였다.
이 트럭 옆으로 김종원 경찰국장이 탄 지프가 지나치고 있었다.
휘발유 드럼통을 실은 한 대의 군용차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는데, 그 운전석의 병사는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내어 오고 있었다.
농협의 트럭은 그 군용차를 앞질러서 마치재를 넘어가고 있었다.
운전석 옆 발판위에 올라선 채 바싹 붙어 서서 매달려 가는 박대장의 눈으로 군복을 입은 건너편의 사내들이 펀득 걸려들었다.
스톱!
박종수 대장이 차를 멈추게 했다.
(저 놈들이 이상해! 아무래도 이상하단 말이야! 여기는 분명히 우리지역인데..... 내가 여기에 대원을 배치한 일이 없는데........ 웬놈들이 저기서 어른거리고 있을까? 저건 아무래도 빨치산 일꺼야! 그래. 공비가 틀림이 없어!)
박대장의 뇌리에는 이와 같은 생각이 일순강에 스치고 지나갔다.
모두들 뛰어 내려라! 저 앞에 수상한 놈이 있다.
박대장이 소리치면서 노변으로 뛰어 내리는 순간, 탕ㅡ 하는 총소리가 울렸는데, 이 때 운전석 옆에 앉은 장경사가 비명을 질렀다.
공비가 쏜 탄환이 장경사(지사면 지서장)이 손을 관통한 것이었다.
아이구!
장경사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노변으로 뛰어 내렸다.
트럭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순식간에 우당탕탕 뛰어 내렸다.
갑작스런 습격을 받게 되자 당황한 그들은 저마다 이리저리 흩어져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박대장은 엠투를 든 채 임실쪽으로 달렸다.
그의 눈앞에는 한 대의 군용차가 멈춰 있는게 보였다.
박대장은 운전사에게 향하여
공비가 나타났으니 가지 말라!
하고 외치면서 그 군용차의 밑으로 기어 들었다.
이 때 삼계면의 배정섭 대원이 엠투를 들고 뛰어오면서
대장님! 대장님!
하고 소리쳤다.
박대장이
여기야! 여기!
하고 말하자 그는 트럭 밑으로 기어들면서
놈들이 옵니다.
하고 말했다.
염려 말게! 아, 저기 오는군! 자, 사격이닷! 사격!
사격!
두 사람은 일제히 방아쇠를 잡아 당겼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다르륵 다르르륵ㅡㅡ
더르륵 다르르륵ㅡㅡ
하는 총성이 터져 나왔다.
총을 들고 일어서던 놈이 다리를 맞았는지 절뚝거리면서 도주하는게 보였다.
대장님! 우리 차가 불탑니다.
놈들이 쏘았다!
모두가 탑니다!
이젠 틀렸어!
휘발유통에 맞은 것 같습니다.
알고 있어.......
총기를 고스란히 태우다니!
놈들이 냄새를 맡고 왔다가 못가져가니까 재를 뿌렸어!
두 사람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자동차는 불길에 휩쌓여 있었다.
콩튀듯 볶아대던 총소리가 뚝 그쳤다.
공비들이 도망치는 모양이었다.
대장님!
엠원 소총을 든 대원이 이 쪽으로 뛰어 오면서 박대장을 불렀다.
뭐냐?
역장님이 희생됐읍니다.
뭣? 역장이?
네! 그리고 지사면 대원도 한사람 희생됐읍니다.
뭐야?
지사면 대원이.........
죽었단 말이냐?
네!
시체를 차에 실어라!
넷!
공비들의 갑작스런 기습을 받고 풍지박산이 되었던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모여들고 있었다.
두 구의 시체는 군용 트럭에 실려졌다.
차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연도경비를 철저히 해야 되겠다.
박대장이 말하자,
여기까지 확대해야 되겠읍니다.
하고 한 대원이 말했다.
차는 굼되게 움직였다.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오수역장의 시체는 오수 역전으로, 지사면 대원의 시체는 지사면으로 옯겨졌다.
오수 역장의 장례식은 역장(驛葬)으로 거행되었고, 그의 시체는 북부산 기슭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박대장은 역장의 무덤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죽은이의 목소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박대장. 이리로 올라오시오!)
(나는 여기에 매달려 가는 게 좋겠읍니다.)
(그러지 말고 이리 올라와서 편하게 갑시다.)
여기가 좋다니까요.
역장의 새무덤엔 파아란 떼풀이 일어나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그 마음을 더욱 살풍경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어여쁜 少女 날 찾아 묻거던
전선으로 떠났다고 傳해 주시오.
어여쁜 그 少女 남긴 말을 묻거든
조용히 고개를 흔들어 주시오.
어여쁜 그 少女 두 볼에 눈물 어리면
그도 울며 떠났다고 傳해 주시오.
사랑보다 더한 것 어데 있기에
사라보다 더한 것 뭣이기에...........
ㅡ 李容相 詩<少女에게>에서ㅡㅡ
이병완은 경북 영천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18세 홍안의 소년인 그는 학도병으로 출전하여 치열한 낙동간 전투에서 공방전을 벌이다가 영천작전에 참전한지 얼마 안되어 부상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총탄은 비오듯 쏟아지고, 괴뢰군은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병완은 사력을 다하여 사격을 가하고 잇었다.
병완의 소대는 적과 벙면으로 맞서고 있었다.
좌측에 위치한 소대가 무너지고, 우측에 위치한 소대도 무너져 가고 있었다.
기관총을 쏘던 사수가 쓰러졌다.
그 옆에 있던 조수가 죽은 사수를 들쳐내고 기관총을 잡았는데, 이 때 병완은 조수가 되었다.
그런데 얼마를 가지 않아서 기관총을 사격하던 전우가 또 쓰러졌다.
이번에는 병완 자신이 기관총 위로 쓰러진 전우의 시체를 들치고 기관총을 챙겨 들었다.
병완은 정신없이 기관총을 적에게 난사하였다.
그런데 병완도 얼마를 가지 않아서 적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제는 누구 하나 기관총을 쏠 사람이 없게 되었다.
모두들 죽었는지, 아니면 후퇴를 했는지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 졌다.
적탄은 병완의 볼을 뚫고, 이빨을 부수고, 혓바닥을 뚫고, 아래턱을 부수고, 목덜미를 뚫고 나갔다.
입에서도, 목덜미에서도, 붉은 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입 안으로 가득히 고인 피가 입술을 타고 턱으로, 앞가슴으로 적셔 나가고 있었다.
산그늘이 내리고 있었다.
북괴군들은 전우의 시체를 툭툭 걷어 차기도 하고, 총검 끝으로 쿡쿡 찌르기도 하고, 따발총을 난사하기도 하면서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병완은 아람들이 나무뿌리에 기대어 무운채 북괴군들의 잔악한 만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격전이 일어나기 전에 소리를 치면서 달려 내려온 노인이 문득 떠올랐다.
불과 몇 시간 전의 일이었다.
머리에는 갓을 쓴 채 하얀 무명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이 이 험준준령을 쏜살같이 뛰어 내려 오면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다.
병완은 그 노인이 부르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은 자식을 찾는 아버지의 부르짖음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누구의 아버지가, 아니면 누구의 할아버지가 이 어지러운 전장에까지 혈육을 찾아 왔을까.
수 많은 생명들이 파리 목숨처럼 허무하게도 사라져가는 이 격전지까지 어떻게 달려 왔을까.
그 노인은 분명히 누군가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산을 뛰어 내려 왔다.
그리고 그 갓두루마기의 노인이 풀밭으로 쓰러지자 학도병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고, 그 노인은 북쪽의 산악을 가리키면서 북괴군들이 처들어오니 속히 피하라고 숨을 헐떡이면서 소리치고 있었다.
병완은 그 노인이 정말 어느 누구의 혈육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 같은 영인인가를 분명히 알 수가 없었다.
그 노인이 병완에게는 수수께끼 같이 느껴지는 의문의 존재였다.
어릴때 돌아가신 할아버지 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고향 마을의 소천양반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인상의 노인이었다.
밤이 왔다.
칠흙 같이 어두운 밤이 왔다.
그처럼 콩튀듯 볶아대는 총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피범벅치던 포성과 아우성은 간 곳이 없고, 열기가 가신 밤이 왔다.
어느 골짜기에선가 밤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병완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다.
그에게는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 뿐이었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숨진 전우들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턱과 목덜미 밑으로 흘러내리다가 엉겨붙은 핏덩이가 끈적거렸다.
병완은 밤길을 더듬거리며 내려가다가 두 명의 전우를 만났다.
그들도 역시 학도병으로 출전한 소년들이었다.
세 사람은 서로 손을 붙든 채 엉엉 울었다.
그리고는 다시 걷기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꺼꾸러지면서, 일어서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피를 뿌리면서, 자꾸만 자꾸만 걸어 나아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먼동이 트고 있었다.
희끄무레하게 열리는 먼 빛에서 푸른 산과 들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느덧 부상당한 학도병들 앞에는 시골 국민학교가 나타나 있었다.
병완은 그 앞에 우뚝섰다.
그러다가는 이내 교내로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하였다.
학교 건물은 텅 비어 있었다.
밤새도록 어둠을 헤쳐온 병완은 피로와 한기에 떨었다.
그는 심한 갈증과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아팠다.
몬 몸이 쑤시고 아팠다.
세상 모르게 잠들고 싶었다.
모기들이 윙윙거리며 달려들고 있었다.
모기들의 침은 아팠다.
그는 혼잣말처럼 물 물을 외쳤다.
그러나 이 소리는 마음 뿐으로, 목구멍에서 멎어 버리곤했다.
물만 마시면 살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 보아도 물은 없었다.
실은 물이 있다 하여도 입의 상처가 크기 때문에 마실수도 없었다.
학교 운동장 가의 잡초 속에서 아침 이슬이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병완은 그 이슬이 빛나는 잡초께로 접근한다.
그는 무릅을 끓고 앉아서 두 손바닥으로 이슬을 받는다.
두 손바닥 위로 약간의 이슬이 고인 것을 들여다 보다가 입으로 가져간다.
그러나 그의 입은 엉망이 되어 있었기 떄문에 그 액체는 입 안으로 스며들지 못했다.
그의 입 안에는 구멍 뚫린 혓바닥이 피와 범벅이 되어 있었고, 박살난 이빨이 입 안의 여기 저기에 처박혀 있었다.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와지고 있었다.
병완은 전우들과 함께 소리 나는 곳을 살폈다.
개구멍이 뜷린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로 푸르게 열린 들판, 그리고 그 들판을 질러오는 트럭이 보였다.
군용 트럭이 멈추자 국군들이 뛰어 내리는 게 보였고, 어디선가 부상병들이 모여 오는게 보였다.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일어섰고, 학교를 벗어났다.
군용차에 오른 병완은 비로소 잠이 들 수 있었다.
차체가 흔들리는대로 죽은듯이 누워 있는 부상병들도 흔들렸다.
차는 얼마를 달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군용 트럭에서 다시 열차로 옮겨졌다.
침대도 의자도 없는 빈 화차였다.
부상병들은 짐짝처럼 실려졌다.
그런데 부상병들을 실은 열차는 좀처럼 움직이려하지 않았다.
지방 도처에 흩어져서 암약하는 공비들 때문이라 했다.
빨치산 타격대는 지방 도처에서 선로를 폭파하고 열차를 파괴하거나 불을 지르며, 살육과 약탈로써 최대의 발악을 하기 때문에 열차는 가다가도 도중의 역에서 며칠씩을 머물게 되곤 하였다.
병완은 아타까왔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경상자들은 가까운 병원으로 가서 응급치료를 받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병완은 그러지를 못했다.
대부분의 부상병들은 말을 제대로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자기의 고통이나 의사를 전달할 수 있었지만, 병완은 우선 말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러지를 못했다.
병완은 하늘을 우러른 채 눈만 말똥거리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을 움직이기에도 힘에 겨웠다.
위생병의 부축임을 받아 열차를 내려온 병완은 풀이 우거진 선로변에 누워 있었다.
하늘은 파아랗게 개어 있었고, 몇 점의 뭉개구름이 건너편 산봉우리에 걸려 있었다.
병안은 몹시 초조하였지만, 어쩌는 수가 없었다.
이 때 기독교인들이 나와서 간호를 하고 있었다.
중년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은 부상병들을 일일히 찾아 다니면서 식사를 제공하기도 하고,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기도 하였다.
여러 날을 세수도 못하여 땟국이 꾀죄죄 흐르는 얼굴이었다.
병완에게도 한 여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여인이 보기에도 병완은 너무나도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원래 체격이 작은 편이었기 때문에 16세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의 작은 몸둥아리가 군복을 입고, 또 총을 들고 싸운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았다.
여인은 안쓰러운듯이 혀를 끌끌 차면서 죽을 먹여 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죽물을 먹일 수가 었었다.
죽물이 넘어가 주지를 않기 때문이었다.
부상을 당한 입 안의 상처가 부어 있었다.
혀가 입 안으로 가득했다.
여인은 죽물에 물을 타서 휘저었다.
묽은 죽물이 되었다.
여인은 손수건을 꺼내어 죽물을 담아 들고는 병완의 입 안으로 쥐어짜 넣는 것이었다.
멀금한 죽물이 병완의 입 안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할 때 그녀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으며, 마침내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여인도 울고 병완도 울었다.
심정과 심정으로 흐르는 소리없는 이야기가 이심전심으로 가슴과 가슴을 번져 나가고 있었다.
며칠 후, 부상병 열차는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병완은 병원에 치료를 마치자 그 여인을 찾아 나섰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여인은 그 고장의 무슨 부녀회장이라는 것을 지나가는 이야기로 얻어 들은 기억이 있었지만, 어느 단체의 부녀회장인지를 아는 이가 없었다.
병완은 하는 수 없이 그 길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전라북도 임실군 둔남면 대명리 남악 부락에서는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병완의 집은 남악리 부락의 첫머리에 위치해 있었다.
남악리 입구에 들어서게 되면, 그 좌측으로 북부산이 있고, 그 북부산의 우측 산기슭을 내려오다가 머무는 개울 앞에 위치해 있었다. 날아갈듯이 치솟아 있는 기와집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죽은 자식이 살아 왔다고 덩실 덩실 춤을 추었고, 돼지를 잡고 술을 빚어 잔치를 베풀었다.
날마다 병완의 사랑채에 모여드는 마을 사람들은 언제나 아슬 아슬하고 신기하게만 들리는 병완의 전쟁 이야기를 들었고, 또한 이 고장의 빨치산 이야기로 밤가는 줄을 몰랐다.
고놈의 빨갱이들은 고산에서도 굉장혔다등만이라우!
암, 굉장혔제! 굉장허고 말고!
빨치산 대장이라고 허는 그 고가란 놈은 말이여, 지독시런 놈이란 말이시!
그 고가놈 패거리 떼 서른명은 말이시! 읍내리를 점령혀 갖고시나, 불을 지르고, 약탈을 하고, 쏴죽이기고 혔는디, 페런허고 총알이 다 떨어지면 말이라, 몽둥이로 처죽였다고!
아군이 오기 전 까지만 혀도 무두들 질겁에 문을 걸어 잠그고 말이라, 쥐죽은듯이 벌벌 떨면서 꼼짝없이 죽었구나 혔다고!
고 놈들은 암튼지 무서운 놈들이라! 한번 물러 갔으면 고만둘 일이제, 두번 세번 자꼬만 처들어 오드란 말이시! 그런디 말이라, 고 놈들은 다시 처들어 올 때마다 눈사람맹이로 그 숫자가 많아지드란 말이시!
처음에는서른명이 처들어 오더니, 나중에는 오백명이나 떼뭉쳐 오드란 말이시!
고 놈들이 그렸제! 고 빨갱이 놈들이 말이라, 나팔을 불다가, 피리를 불다가는 징치고 꽹가리를 치면서 들어와 갖고시나, 지서와 면사무소를 점령해 놓고는 닥치는대로 부수고 때려 잡더란 말이시!
경찰관 뿐만 아니라, 면서기 같은 공무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 리장만 지냈어도 그 가족들 꺼정 끌어내어다가 죽창으로 찔러 죽였단 말이시!
공산당에 입당을 안헌다고 말이라, 배씨네 가족을 총살한 것은 생각만 혀도 끔찍허다고!
끔찍한게 워디 고것 뿐이간디요. 네번째로 1천2백명이 처들어 올 때는 말이제, 우익인사들의 가족들을 끌어내어 갖고시나, 죄다 쥑였지 않았능기요.
부녀자와 어린애들까지 발가벗겨 놓고시나 칼로 머리와 팔다리를 잘라서 처마 밑에 매어 달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산사람 몸에 돌을 달아서 새우젓 담듯이 우물에 꺼꾸로 처넣어 죽이지 않았능기요!
고 놈들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이고서야 워떻게 고롷게 우익 인사의 가족이라고 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쏴죽이게 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쏴죽이게 헐 쑤가 있다요? 잉? 안그렇소?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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