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홍류동계곡!!!

지역이야기/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조국행진곡 - 코리언 솔져 -

흘러 가는 2020. 8. 3. 13:10

<오수의용소방대 1955.4.8 원동산>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다.

  국토방위군이 줄을 지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무질서한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진주로 가는 행렬 이었다.

  둔남면 사무소에서는 주먹밥을 뭉쳐서 방위군을 대접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몰려나온 여인들이 밥을 지어 가지고 뭉쳐 주고 있었다.

  반찬은 소금물이었다.

  여인들이 밥을 뭉칠 때는 소금물을 손가락으로 적셔 가면서 뭉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주먹밥은 약간의 소금기로 인하여 건건 찝질하였다.

  그래도 국토방위군이라는 이름의 장정들은 그 주먹밥을 서로가 먼저 차지하려고 여기 저기서 나도 나도 하고 손을 벌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먼 길을 가다가 허기를 면하기 위해서 한 덩이씩의 주먹밥을 받아들고는 행렬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기나긴 행렬 속에서 소금기 절인 주먹밥을 뭉텅 뭉텅 베어 물면서 자꾸만 남쪽으로 내려간다.

  장정들의 옷차림은 가지각색이었지만, 그들의 행동도 여러모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아이고오! 이놈들아!

  둔남면사무소 옆에 오수지서가 있었는데, 그 오수지서의 담장 밑에서 노파의 찟어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놈들아! 돈 내고 가거라!

  노파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었다.

  죽창댁이었다.

  아이고오! 이 놈들아! 돈을 안줄라면 떡이나 내놓고 가거라아!

  죽창댁의 눈에서 눈물이 찔끔거렸다.

  고막 같은 눈이었다.

  머리 위에서부터 목덜미 아래로 돌돌 감아 내린 무명 목도리에는 함박눈이 소보록히 쌓여 있었다.

  세상에 원 이럴 수가 있당가! 잉? 손주딸들이 고롷게도 달라고 보채쌈선 손을 벌리는 것을 독헌 맘을 딱 묵고시나 매정시럽게 주지도 않고 나왔는디, 떡을 갖고 도망을 치다니 세상에 원 이럴수가 있당가.......

  죽창댁은 넔이 다 빠져버린 사람처럼 맥이 탁 풀린 눈으로 먼 산을 바라본다.

  죽창댁의 눈길이 머무는 천황봉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그리고 천황봉 줄기를 타고 내려오던 산줄기가 딱 멈추어진 단애에는 하얀 신작로가 뻗어 나가고, 그 신작로 위로는 국토방위군이라는 이름의 장정들이 느리게 움직이는게 보였다.

  떡값을 치르지않은 채 떡을 훔쳐들고 도망친 사내가 야속해서인지, 아니면 왜정때 징용으로 끌려간 뒤로 영영 소식이 없는 자식을 생각함인지 노파는 언제까지나 말없이 앉아만 있었다.

  이 때 엿 목판을 든 소년이 비실비실 다가오면서

  할매!

  하고 노파를 불렀다.

  그 소년도 어디서 울었는지, 눈 언저리에 눈물자국이 나 있는 게 보였다.

  소년의 무르는 소리에 훔찔 놀라는 노파는, 그 소년이 자기의 외손자임을 알고는 반색을 하면서

  벌써 다 팔았냐?

  하고 묻자, 그 소년은 목멘 소리로

  뺐겼어요!

  하고 힘 없이 말했다.

  머시라고 빼앗겼어?

  .............

  워떤 놈이 빼앗더냐! 잉?

  아저씨들이!

  월메나 뺏꼈어?

  몽땅 뺏꼈어요!

  몽땅?

  ............

  아이구, 휴ㅡㅡㅡ

  죽창댁은 한숨을 내쉬었다.

  죽창댁은 이제 울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야 소용 없는 일이었다.

  죽창댁을 에워싸며 기웃거리던 사람들도 하나씩 둘씩 흩어져 가고 있었다.

  죽창댁의 고함소리를 듣고 몇 사람의 대원들이 달려왔으나 떡을 훔친 사내들은 이미 남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행렬 속으로 사라진 뒤였기 때문에 그들도 어쩌는 수가 없었다.

  소년은 죽창댁의 떡목판까지 챙겨들었다.

  죽창댁은 왼손이 부자유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죽창댁은 얼마 전에 떡을 이고 나오다가 눈길에 미끄러져서 왼손을 삐었었다.

  그래서 그 왼손은 다시는 바르게 돌이킬 수 없는 비뚫어진 손이 되고 말았다.

  죽창댁은 달떡을 잘 빚었다.

  반달 모양의 달떡 이었다.

  달떡은 흰색과 쑥색으로 언제나 두 가지 색깔을 내었다.

  그러나 요즈음은 인절미를 주로 하였다.

  왜냐하면 달떡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었다.

  달떡을 만들기 위해서는 매끈한 다듬이돌 위에 짓이겨진 떡무더기를 놓고 다듬이 방망이를 굴려 가면서 만들어야 하는데, 죽창댁은 떡을 만들 때마다 병신된 손을 안쓰러워하였다.

  북창댁은 부자유한 손, 그 비틀어진 손으로 다듬이 방망이를 굴려 가면서 달떡을 빚을때면, 이것을 지켜보던 손주 녀석이 불쑥 나서는 것이었다.

  손주 아이가

  할매! 손 아프지? 

  하고 물으면, 죽창댁은

  아니다. 괜찮다.

  하면서 팥고물을 손주의 입에 넣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눈물을 찔끔하고는 죽창문 창호지에 붙어 있는 유리조각 사이로 열린 쪼각하늘을 내어다 보는 것이었다.

  죽창댁이 눈물을 찔끔 거린다거나, 혼잣말이나 혼자 노래 같은 것을 흥얼거리는 경우는 대개가 자식 생각이 날 때다.

  똑똑한 자식들이 모두 전쟁터로 끌려 나간 뒤로는 영영 소식이 없었고, 벙어리된 딸과 손자들에 의지하여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처지였다.

  이 무렵엔 대원들의 사기도 저하 되어 있었다.

  모조리 내려가고 나면, 이 지방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그러니까 말일세.

  우리들 만이라도 내려가선 안된다.

  대원들은 술을 마시면서 괴로움을 달래고 있었다.

  실은 대원들 뿐만 아니라, 이 지방 유지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떻게 한다지?
  하고 김용훈이 말하자

  용기를 내어야 하네! 용기를! 자, 이럴 수록 술을 들고 힘을 내세!

  하고 박종수 대장이 말했다.

  여기에 자리를 같이 했던 김동석 둔남면장이

  우리는 끝까지 이 고장을 사수하기로 하고, 가족들만 피신을 시킵시다.

  하고 말하자, 두 사람도 역시

  그래야지요.

  그렇게 합시다.

  하고 동의를 표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김동석 둔남면장은 술이 부쩍 늘었다.

  그는 마음을 둘 곳이 없었다.

  연일 계속해서 밀려 내려가는 국토방위군의 무질서한 행렬을 바라볼 때마다 그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 앞에는 무수한 군인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장교와 사병이 한데 뒤죽박죽이 되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는 게 보였다.

  군인들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동석 면장이 별안간 군인들의 행렬 속으로 뛰어 들었다.

  그는 양 팔을 벌리고 군인들을 가로 막으면서 외치기 시작했다.

  ............못간다! 못간다! 이 놈들아! 누구를 버리고 내려가느냐! 이 놈들아!

  우리 고장은 어쩌라고 네놈들만 내려 가느냔 말이닷! 이 놈들아!

  김동석 면장이 격한 어조로 외치자.

  저리 비키시오!

  하고 장교 한 사람이 소리쳤다.

  뭐라구? 비켜?

  김동석 면장이 소리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대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 육군 장교가 눈을 부라리면서 저만치 행렬에 휩쓸려 가고 있었다.

  비키시오! 방해하면 총살이오!

  이번에는 또 다른 굵은 목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뭐야? 총살?

  이러다간 밟혀 죽으니까 저리 비키시오!

  행렬속의 여기 저기에서 이러한 말이 튀어 나오자, 김동석 면장은 상대편을 쏘아 보면서 더욱 격한 어조로 소리치는 것이었다.

  이 놈들아! 이 못난 놈들아! 조국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단 말이냐? 이대로 내려가려면 나를 밟고서 내려 가거라! 이 놈들아!

  김동석 면장은 국토방위군이라는 이름으로 내려가는 장정들에게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비틀거렸다.

  이 때, 헐레벌떡 달려오는 시람이 있었다.

  그의 아우 김현주였다.

  형님! 어쩔려고 이러십니까? 여기서 총맞아 죽으면 개죽음을 당하는 겁니다.

  개죽음?

  네! 개죽음이지요! 개죽음이고 말고요! 아까 그 장교가 형님에게 총을 쏘려다가 그냥 갔읍니다. 

  저 놈들이 나를 쏘아?

  형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현주야 이 놈아! 너는 조국 앞에 절대로 총을 겨누지 말라!

  형님! 염려 마십시오!

  야! 현주야, 이 놈아! 너희들은 우리 둔남면을............아니, 이 조국 땅을 지킬테냐 버릴테냐?

  물론 지켜야지요! 지키고 말고요! 염려 마십시오!

  모두가 다 가더라도 우리는 가지 말자! 잉!

  네! 안내려 갑니다.

  고맙다! 현주야!

  형님, 어서 일어나십시오! 날씨가 찹니다!

  그래, 일어나야지! 내 조국처럼 나도 일어나야지!

  김동석 면장은 아우에게 팔을 잡힌채 마침네 울음을 터뜨렸다.

  뼈 속 깊이 사무친 울음이었다.

  국토방위군이 남으로 내려가는 노변에서 꺼익 꺼익 울고 있었다.

  형님!

  이놈아!

  두 형제는 서로 붙들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까지 쌓이고 쌓였던 슬픔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

  아침부터, 아니 어젯밤부터 퍼마시던 술기운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디다가 기댈 수 없는 조국의 황폐한 분위기가 눈물을 재촉하는 것이었다.

  눈물과 눈물, 심정과 심정, 사랑과 사랑, 피끓는 애향심이 한 곳으로 모여들어서 어디론지 흘러가고 있었다.

  한없는 슬픔의 강줄기를 따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끝없는 이상의 나라로 흘러 가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환상적인 생각은 이들로 하여금 더욱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하였고, 더욱 절실한 고독을 느끼게 하였다.

 

         荒凉한

         이 廢墟 위

         어느 곳에도

         너의 무덤은 없었다.

 

         다만,

         祖國을 위한

         젊은 너의 生命이

         祖國의

         하늘 밑

         여기 沃野의 焦土된

         凄絶한 戰野에서

         너, 죽어감을

         어느 少女가 記憶할 따름이다.

 

         티끌 하나 없는

         戰線의 淨白 속에

         告別마냥 少女에로 보내던

         너의 最後의 微笑가

         서러운 너의 人生의

         全部는 아니던 것을

         이제 너를 일러

         祖國의 英明한 勇士라고

         부르며, 부르면서

         불길이 솟는

         머언 ㅡㅡ斷崖를 向해

         별과 함께 吊哭하는

         少女가 있어

         민들레 날으는

         봄의 廢墟 위에서

         招魂의 노래마냥

         목메어 너를 부른다.

                 ㅡㅡ白道欽의 詩<招魂의 노래>에서ㅡㅡ

 

  둔남면 특동대원 중에서 영어를 아는 대원이 별로 없었다.

  그러한 까닭에 대원들과 미군 사이에는 의사 소통이 되지 않아서 오해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었다.

  미군들이 대원들을 보게 되면, 무서워 하면서 도망질을 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대원들도 또한 미군들을 꺼려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와 같이 웃지 못할 희비극이 도처에서 일어나곤 하였다.

  어느날 아침의 일이었다.

  한대의 지프가 눈발을 헤치면서 금암교 앞으로 달려왔다.

  미군 지프였다.

  그 미군 지프는 김동석 면장앞에서 멈췄다.

  면장님! 면장님! 큰 일 났읍니다.

  한 청년이 지프에서 뛰어 내리면서 김동석 면장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삼계면 특동대원 이우만이 찦차에서 끌려 내려왔다.

  면장님! 말씀 좀 해주십시오!

  이우만 대원은 풀이 죽어 있었다.

  어째서 그러나?

  저 미군이 이사람을 빨치산으로 잘못 알고서 죽이려고 합니다.

  빨치산?

  네! 빨치산으로 오인하고서 쏘아 죽이려는 것을, 이렇게 손짓 발짓 다 해가면서 겨우 면장님께 대리고 왔읍니다.

  대원은 손짓 발짓을 하는 시늉을 해 보이면서 설명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구만.

  면장님 살려 주십시오!

  김동석 면장은

  난 공부를 한지가 오래되어서.........

  하고 중얼거리면서 미군 병사를 바라보았다.

  그 미군 병사는 의아한 눈으로 김동석 면장을 바라보면서, 그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의 푸른 눈동자는 호수처럼 맑고 그윽했다.

  김동석 면장은 오랫동안 영어를 사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담을 쌓고 지내온 터이므로 기억에서 떠오르는 쉬운 영어를 찾아내고 있었다.

  코리안솔져! 코리안솔져!

  김동석 면장이 삼계면대원을 가리키면서 한국군이라고 연거푸 말하자, 그 미군병사는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띄우면서 알겠다는 듯이

  오케! 오케!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미군 병사는 연신 머리를 수그리면서 아임쏘리를 연발했다.

  미군 병사는 지프에 올랐다.

  허어연 이빨을 드러내기 잘하는 흑인병사가 지프의 시동을 걸고 차를 몰기 시작하였다.

  금암교를 단숨에 건너간 지프가 남원쪽으로 사라져 갈 때 김동석 면장은 시선을 옮기면서

  저 미군은 남원군청에 있는 분이야.

  하고 말했다.

  면장님! 감사합니다.

  천만에.

  가십시다.

  가다니?

  제가 한잔 사겠읍니다.

  술 말인가?

  네, 대접하고 싶습니다. 

  술을 준다면 먹어야지.

  가십시다.

  가야지.........

  눈은 여전히 날리고 있었다.

  목화송이 같은 함박눈이었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기 때문에 마음은 더욱 살풍경해지는 것만 같았다.

  끝없이 내리는 눈송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더욱 많은 술을 들이키게 하였다.

  술을 잔뜩 얻어 마신 김동석 면장은 거리로 나왔다.

  얼큰하게 취기가 오르고 있었다.

  취기가 오르면 오를수록 그는 한 곳에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안일하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수는 없었다.

  미친짓이라도 해서 이 고장을 지켜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것이었다.

  김동석 면장은 건넜던 금암교를 다시 건너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가 혼자 말처럼 지껄여대는 소리는 행인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그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올라 상기되어 있었다.

  그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술주정하는 허튼 소리처럼 지껄여대는 그의 이야기는 약간의 혀꼬부라진 소리를 내고 있었으나 그 말은 어딘지 모를 힘이 있었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거짓말은 그럴듯하게 꾸며대면서 약간씩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걸음 걸이는 다소곳이 의기양양하게 걸어 나아가는 걸음걸이였다.

  ............어떡헌다지? 이 일을 어떡헌다지? 날개 오천장을 어떻게 준비를 한다지?

  이 혼란한 때에 말야. 써까래 만 개하고 날개 오천장을 어떻게 준비를 한다지?

  큰 일이야 큰 일! 내가 면장을 하면서도 이런 일은 처음이야. 딸국, .........아무래도 여기를 피난처로 만들 모양인디..........딸국, 큰 일이야..........딸국...........

  김동석 면장은 연신 딸국질을 하면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길을 걷다가는 우뚝서고, 섰다가는 다시 걷는 것이었다.

  그의 앞에 건장한 사내들이 나서면서

  면장님!

  하고 불러 세웠다.

  가던길을 멈춘 김동석 면장이 게슴츠레하게 내려 깔린 눈꺼풀을 열고 청년들을 바라본다.

  ............자네들이 웬일인가?

  면장님!

  왜 그래?

  정말입니까?

  뭐가?

  공문이 왔읍니까?

  날개하고 써까래 말인가?

  네.

  내려왔지.............

  정말입니까?

  정말이고 말고! 암! 정말이지!

  그러니까 이놈들아! 내려가지 마! 굉장히 큰 집을 지을 모양이니까. 내려갈 필요가 없단 말이 닷! 이 놈들아!

  모를 일이 군요.

  뭐가 모를 일이야?

  면장님 이러시다간 큰 일 납니다! 어서 들어가십시다!

  왜 이래?

  위험합니다.

  뭐라구?

  너무 취하셨읍니다.

  손 놔! 이 놈아!

  가십시다!

  손 놔!

  김동석 면장의 고함소리가 어둠속에 멀어져 가고 있었다.

  그 소리는 슬픈 매아리로 울려 오곤 밤이 깊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밤이 깊도록 이한섭씨의 집에서도 술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흥겨운 주연이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우울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우리가 만일의 경우, 후퇴를 한다고 하더라도 죽이고 가지는 맙시다.

  사람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있겠소!

  그러니 죽이지 맙시다!

  만일 우리까지 후퇴를 한다면, 상부의 명령이 있을텐데, 명령이 내려오면 나로서는 어쩌는 수가 없읍니다.

  처단한단 말이요?

  하는 수 없지요.

  죽이고 가게 되면 놈들이 와서 틀림없이 보복을 합니다.

  보복이 두렵소?
  우리는 상관 없지만 무고한 양민들을 무작정 희생만 시킬 수는 없오!

  이 고장의 각 기관장들과 유지들이 자리를 같이하여 이야기를 깊어가는 밤, 밖에서는 눈이 소복이 내리고 있었다.

  밤새도록 내린 눈은 온 산하를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이 무렵 장수군의  팔공산에 은거해 있던 빨치산 부대가 성수면 오봉산으로 이동해 오고 있었다.

  이 때 둔남면과 지사면 특동대는 작전을 개시했는데, 이와 같은 와중에서도 김현주와 김규현은 30명의 대원을 이끌고 출동하여 성수면 삼봉고지에서 교전, 적을 퇴각 시키고 돌아왔다.

  장수군 산서면 쪽으로 뻗어 내려온 팔공산 줄기는 지사면 안하리의 12연봉을 거쳐 둔남면 쪽으로 연결이 되고, 여기에서 다시 삼계면과 동계면 쪽, 또는 청웅면 쪽으로 연결되는 산줄기가 순창군 쪽으로 이어져 나가기 때문에 회문산과의 연결 루우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빨치산의 이용 루우트가 되는 이 산줄기를 차단하는 일이란 대단히 중요하였다.

오수초등학교1980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