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홍류동계곡!!!

지역이야기/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조국행진곡 - 부상병열차(負傷兵列車)-

흘러 가는 2020. 8. 31. 13:05

<봉천마을 앞, 도로로 변한 옛 전라선 철길>

  워쩌면 고롷게 모지락시럽게도 쥑일 수가 있다요, 잉?

  글매 말이요!

  폭탄 떨어진 물웅뎅이에다가 몰아 넣고시나 고롷게도 독살시럽게 쥑일 수가 있다요, 잉?!

  관촌에서도 굉장히 죽었담서라우, 잉!

  글매 말이요! 냇가에서도 몰사죽음을 당하고, 사선대 꼭대기에서도 굉장히 죽었능개벼요!

  엉골댁이 그런디 토굴 속에다가 사람들을 몰아넣고 고추대를 태워서 숨맥히게 쥑였다데!  

  차마 눈뜨고는 못 볼 일이라! 죄없는 사람들을 돌로 처죽이는가 허면,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불더미 위에다가 올려놓고시나 태워 죽였담선..........쯧쯧쯧!

  관촌에서는 인민재판이라는 것을 헌다고 동네 사람들을 끌어내 놓고시나 백명이나 쥑였다는디, 차마 눈뜨고는 못보것다고 소천떡(댁)이 그러데!

  글매 말이요! 이장(里長) 조깨 지냈다고 생매장을 시키는가 허면, 군인 간 아들이 있다고 혀서 그 아비가 돌에 맞아 죽었다고 헙디다!

  촉성회의 청년부장이라는 사람은 말이제, 반동분자로 낙인이 찍혀 갖고시나 불에 꼬실라 죽었다는디, 영 볼 수가 없었다고 그러데! 암튼지 말이제, 고 놈들은 아주 독헌 놈들이라! 독종이라! 사람을 쥑여도 보통으로 안죽이니 말이제! 사람을 쥑여도 불에꼬실라 쥑이든지 아니면 껍질을 벳겨 쥑인당개! 워떤 원수가 젔다고 사람을 고롷게도 모지락시럽게 쥑이는지 모룰 일이제! 모룰 일이라!

  사선대 꼭대기에서는 말이제 부안군수랑 많은 지방 유지들이 총살을 당혔는디 관촌 사람들도 골짜기로 던져저서 몸뗑이가 왼통 깨지고 절단나 죽어서 사선대를 흐르는 냇물은 왼통 피로 물들었다고 허데!

  고, 빨갱이 놈들은 지 예편네도 없는가! 동네 여자들을 끌어내 가지고, 꾀를 벳기고 칡넝쿨로 목을 얽어 매서는 끌고 댕기는디 차마 못보것다고 허쌈선, 엉골떡(댁)은 혀를 차등만!

  진안에서도 굉장히 죽었능게벼! 낙동강전투에서 도망쳐 온 빨갱이들이 이백명이나 덕유산 줄기의 운장산에 모여서 동네 사람들을 못살게 굴다가 봉학리에서 백명쯤이나 죽었다데!

  고 놈들이 거기에서는 애기를 낳은지 사흘 밖에 안되는 산모를 칼로 찔러서 죽였다는디, 산모뿐만 아니고, 일곱살배끼 안되는 에린 것을 칼로 찔러 죽였다는디, 워쩌먼 사람의 마음이 고롷게도 독헐 수가 있다요, 잉?!

  글매 말이요! 고창군 에서만도 천명이나 죽었다는디, 공음면에서는 칠백마흔 여섯명이나 대창에 찔려 죽었다요! 아무 철도 모를 에린 것들을 굴비를 엮듯이 뒤로 묶어서 구덩이에다 떡고물 놓듯이 삼백 열다섯명이나 빽빽히 몰아 넣고는 생매장을 시켰으니, 죽은 원귀라도 눈을 못감것제라우, 잉? 석교리에서는 말이제 원 세상에 페런허고 김집사네 일곱 식구가 예수 조깨 믿었다고 갓난애까지 모조리 죽였뻐려서 손(孫)이 끊어졌대야! 손이!

  그 집안도 절손이 되고 말았끄만!

  그렇지요! 씨를 말렸으니..........

  에이그! 끔찍해라!

  쯔쯔쯔! 어쩜 고롷게도 끔찍혀!

  오류에서는 빨갱이들이 기차에다가 불을 질렀대야!

  글매 말여! 부상당한 국군들을 꼬실라 쥑였다등만!

  산채로 태워 쥑이는디 볼수가 없었능개비여!

  워떻게 생사람을 꼬실라 쥑인당가, 잉?

  글매 말이여!

  1951년 가을.

  남원에서 부상병을 싣고 전주로 향하던 열차가 오류역 부근에서 기습을 당했다. 공비들은 세 개의 화차에 부상병을 싣고 올라가는 열차를 향하여 기관총을 난사하고 불을 질렀다. 열차는 순식간에 불이 붙어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열차에 붙은 불이 더욱 기세를 돋굴수록, 목숨이 붙어 있던 부상병들의 비명 소리가 불길 속에서 처절하게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인간으로서는 차마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없는 참혹한 광경 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처럼 무자비하게 태워 죽일 수 있는 잔인성이 들어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랄 일이었다.

  둔남면 특동대에서는 임실경찰서의 연락을 받고 긴급히 출동을 서둘렀다.

   박종수 특동대장은 오류리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철로 부근에 대원들을 배치하였다. 그리고, 박대장과 함께 30명의 대원들이 오류역 근처의 사건 현장으로 달려갔다.

  열차는 불에 타고 있었다. 부상병들의 불에 타죽은 시체가 불길에 그을린 채 화차칸 여기 저기서 나뒹굴고 있었다.

  죽일 놈들!

  박대장의 입술이 부르르 떨렸다. 대원들은 말이 없었다.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 처참한 죽음 앞에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다만, 말이 없는 대원들의 가슴 가슴에는 무서운 분노와 적개심이 부글 부글 끓어 오르고 있었다.

  묻어주자!

  박대장이 말했다. 그는 대원들을 둘러 보면서 말했다.

  ................ 불쌍해서 못보겠다! 이 사람들을 우리가 묻어 주지 않으면 누가 묻어 주겠나?

  묻어 줘야죠! 차를 밀고 갑시다! 오수역에다가 밀어 놓고 시체를 묻어 줍시다.

  불타는 화차 옆에서 대원들은 말했다. 대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대장이 입을 열었다.

  일소대는 종동과 평당으로 해서 넘어 오기 바란다. 우리가 만일 기습을 당하게 되면 지원사격을 해주기 바란다.

  놈들이 철수하지 않았을까요?

  아직은 철수하지 않을 기능성이 충분하다. 놈들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이 화차를 밀고 오수로 갈 것을 예측할 수도 있다.

  대원들은 두 패로 갈라졌다. 대원들은 열차 화통간과 화차가 연결된 곳을 푼다음 하나씩 하나씩 밀어 가고 있었다.

  화차가 오촌고지 밑을 마악 넘어 가려고 하는데, 그 오촌고지에서는 펀득 하는 불빛과 함께 에이코탄(신호탄)이 핑ㅡ 핑ㅡ 날아왔다.

  기습이닷!

  박대장이 소리치면서 선로를 벗어났다. 그는 바위 밑에 몸을 숨긴 채 소리쳤다.

  대원들은 각자 행동하라! 은폐물을 이용하면서 각자 행동하라!

  박대장은 소리 소리 지르면서 몸을 잽싸게 움직였다.

  여기에서부터 오수역이 있는 남쪽은 내리막 길이었다. 맨 앞에 밀려가던 화차가 내리막을 저절로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 화차도 불이 발발발 타오르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종동과 평당을 지나온 특동대원들이 지원사격을 하고 있었다. 공비들도 기를 쓰고 총탄을 퍼부어 대고 있었다.

  아악!

  김용호 대원이 쓰러졌다. 그의 귀에서는 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대원들이 그를 부추기면서 끌어 내리고 있었다. 그들은 빗발치듯 날라오는 총탄을 피하여 철로 밑의 노깡 속으로 숨어 들었다. 오촌 기와막 앞을 뛰어 가는 박대장이 보였다. 그는 군화를 벗어들고 맨발로 뛰고 있었다.

  화차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면서 기습공격을 가해오던 공비들이 15명의 대원들로부터 응원사격을 받고서 주춤거리다가 마침내는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공비들은 사살된 자기 동료의 시체를 질질 끌면서 도주하다가 대원들의 공격을 받고, 또 한 사람의 공비가 부상을 당하게 되자 시체를 버린 채 도주하였다.

  대원들은 높은 지대에 머물러 있는 남어지의 화차도 밀어 내렸다. 열차 화통간은 화통간대로, 화차는 화차대로 저절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불을 달고 쏜살 같이 굴러 내려가는 열차 화통간을 바라보던 주민들은 영문을 모르고 어리둥절 하였다.

  오매! 워쩐 일이다제?

  글매 말이요!

  워쩐 일로 조롷게 불이 붙어 갖고시나, 기자 대가리만 궁굴어 온다제?

  그렁개 말여! 암튼지 몸뗑이는 떼집어 내던지고 대가리만 댈룽 궁글어 오는 게 요상시럽단 말이시!

  세상이 난리통속이라 안그런가?

  고, 빨갱이 놈들이것제! 암, 고롷제! 고롷고 말고! 고, 웬수놈의 빨갱이 놈들이 아니먼 누가 불을 지르것능가 말이시!

  아까부터 똑(꼭) 콩 볶는 소리가 났는디, 고 때 불이 붙었는 개비여!

  앗 참! 아까 오류리 쪽에서 총소리가 났제!

  누가 또 상혔는지 모루것끄만이라우!

  그렁개 말이제라우, 잉?

  걱정이그만이라우! 애 아비도 출동혔을텐디!

  오수역을 지나친 기관차는 앙골 마을 앞에서 멈춰 섰다.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지껄이면서 불타는 화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원들은 기관차를 다시 오수역으로 밀어 왔다. 기관차는 오촌고지에서부터 내려오는 서슬에 오수역을 지나친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오수역에 다은 화차에서 시체를 점검했다.

  이튿날, 불타죽은 부상병들의 시체는 북부산 공동묘지로 옮겨졌다. 불길에 타고 그을은 열 여덟 구의 시체는 누가 누구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화차에 누워 있던 18명의 부상병의 전원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는데, 이들은 주로 미군과 전투경찰대원(205전투경찰대원)들이었다.

  회문산 기슭의 늦가을은 겨울 날씨처럼 쌀쌀했다. 매서운 바람이 바람이 나무가지들을 흔들고 지나갈 때마다 마지막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우수수 우수수 들려오고 있었다.

  이 무렵, 회문산 가막골은 공비 아지트에 대한 섬멸작전이 개시되었다.

  신상묵 경무관이 시령관으로 지휘하는 지리산지구전투경찰사령부 산하 203부대와 205부대의 연합작전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 전투경찰대원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총은 주로 카빈소총에 복장은 국군복과 미군복, 그리고 일본군복, 심지어는 공산괴뢰군복을 그대로 입고 있는 대원들도 개중에는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오로지 공비를 소탕하는 것만이 중대한 당면과제이며, 임무라고 믿는 사명감에 부풀어 있었다.

  공비들의 저항은 완강했다.

  공비들은 막강한 인원과 무기로서 소수의 경찰과 특동대원들을 괴롭히고 있었다.

  회문산 일대에 거점을 둔 공비는 소위 전북도당의 항미부대와 외팔이부대였다. 이들은 주로 쌍치 복흥 구림 등 순창군내의 미수복지구를 장악하고는 공공건물이나 사찰 등을 점령하여 인민학교와 군사훈련소까지 설치해 놓고 농사까지 짓고 있었으니, 그 규모는 상당한 것이었다.

  군산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전차대의 협조를 받은 203, 205전투경찰대는 회문산 주봉을 포위하여 공격을 가했다. 이 때 5백여명의 공비들은 완강한 저항을 했으나 결국은 덕유산 쪽으로 도주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70여명의 공비가 사살되거나 생포되고 또는 귀순한 자들도 있었는데, 아군의 수색작전은 계속되고 있었다.

  지리산 회문산 백운산 운장산 주변에 은거했던 공비들은 38선 이남에 있는 공비 총 수의 90%에 달하는 사단규모의 대병력이었다.

  이들 대분분이 아군의 인천상륙작전과 급속한 북진으로 낙동강전선에서 미처 퇴각하지 못해서 퇴로가 차단된 북괴군 패잔병과 지방공비들이었다.

  북괴의 김일성으로부터 조선인민유격군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현상이가 지휘하는 지리산 주변은 소위 남조선유격대남부군단이 있는 공비들의 심장부였다.

  지방빨갱이들의 우상적인 존재로 보였던 이현상은 낙동강전선이 붕괴되자 정예부대인 남부군단을 이끌고 강원도 이천까지 후퇴했다가 김일성의 남한 빨치산을 총지휘하여 교란작전을 펴라는 지령을 받고 다시 남하하여 이곳에서 암약하게 된것이었다.

  이현상은 지방공비들을 사단, 도당유격대, 군당유격대, 유격대지대, 도당사령부 등으로 개편하여 죽지 않으면 살기라는 구호까지 내걸고 악랄한 교란작전을 펴고 있었다. 이들은 호남지방을 소위 해방지구화 하기 위해서 치안교란과 함께 생산기능을 마비시키고, 영농까지 방해하면서 장기전화를 기도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회문산 주변의 이 지방에서도 날이 갈수록 공비들의 반항은 악날해 져서 공포의 분위기가 휩싸이게 되었다. 살인이나 방화, 약탈 등은 흔히 있는 일로서, 자동차습격, 철도파괴, 열차 전복 등등 이루 다 헤아릴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둔남면 특동대원들은 공비의 기습으로 불타죽은 부상병들의 시체를 북부산 양지바른 곳을 찾아 묻어 주면서, 억울하게 숨진 이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빌었다.

  이들은 마땅히 동작동 국군묘지에 안치되어야 했으나, 시대가 너무도 어수선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한 방울의 이슬처럼 사라져 갔던 것이다. 이들, 이름 없는 무명의 용사에게는 빛나는 훈장도 소용없었다.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이 오직 조국을 위하여 한줌의 흙으로 사라져 갔던 것이다.

이들의 무덤은 호화롭게 꾸며진 무덤이 아니었다. 이들의 무덤 앞에는 한 구절의 멋들어진 비문도 없었으며, 죽은 자의 이름 석자가 새겨진 푯말조차도 보이지 않았다.다만 날이 갈수록 무성하게 우거진 잡초들만이 떠오르는 햇살에 더욱 푸른 및을 발산하고 있을 따름이다.

  풀잎은 국방색 빛깔이었다. 독한 깡소주를 마시고 눈물을 흘리면서 대원들이 손수 다독다독 입혀주고 다져 준 떼풀에서는 지난 날의 싱싱했던 젊은 시절을 기억해 낼수 있을것만 같았다.

  이들, 이 땅의 자유와 평화, 우리의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 싸우다가 숨져 간 이들이 비록 국군묘지에는 안장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들의 영혼은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숨쉴것이다. 이들의 영혼은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조국의 태양을 바라볼 것이다. 조국의 한없이 높푸른 하늘을 바라볼 것이다. 그리고 두 손을 양허리에 짚은 채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조국행진곡을 부를 것이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혈관에 파동치는

  애국의 깃발

  ..........................

  ..........................

  이들이 저세상에서 불러대는 이 군가 소리는 우리들의 의식의 세포를 타고 꿈틀거리며 살아 움질일 것이다. 그들이 부르고 간  이 군가 소리는  조국의 튼튼한 뿌리가 되어 맑은 정신을 길어 올릴 것이다. 전쟁의 슬픔, 그 아픔, 그 비참함을 모르는 전후세대, 감각주의에 정신이 팔릴 위험성이 짙은 6.25동이와 그 이후의 세대에게 새로운 자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조국애와 민족애, 애향심을 심어 줄 수 있는 전신적인 에너지가 되어 줄 것이다.

 

  그날, 피범벅치던 불길

  잠잠히 가라앉은 한강

  저기 林立한 長安이

  꿈결처럼 굽어 뵈는 이 언덕에

  뻐국이 운다.

  뻐국이 운다.

  銅雀洞.

  누가 그대의 무덤,

  누가 젊음의 고향을 찾거던

  어딜 가르키랴 너는.

  그 끓던 피

  三千里 全身을 적셔

  三千里의 心臟에 고여

  여기, 國防色 짙은 綠陰 속

  솟아오른 이 하얀 푯말.

  이 하얀 푯말.

  누가 우리의 祖國을 찾거든

  누가 祖國의 心臟을 묻거든

  어딜 가리키랴 너희는.

  외롭고 아픈 날이 있어

  다시 六月이 오면,

  너희 젊은 피 하나로 끓일 

  六月이 오면

  우리 죽음으로써 다시 살아날

  그 六月이 오거던 오라.

 

  여기, 祖國의 心臟

  正義와 自由의 함성이

  新綠처럼 메아리치는

  銅雀洞.

  이 하이얀 푯말 앞에.

   ㅡㅡ 成權永의 詩 <銅雀洞>에서 ㅡㅡ

 

<1957년경 역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