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가을.
지방 도처에서 출몰하는 빨치산들은 여러 가지의 수단과 방법으로 민심을 소란하게 하고 있었다.
군용열차를 기습하여 전복시키고, 군용품을 약탈해 가는가 하면, 부락을 습격하여 양민들을 학살하고 닥치는 대로 털어 가기도 하였다.
민간 객차를 이용하는 군용차가 남원에서 출발하여, 전주를 향해 올라가다가 사매면 계수리의 뒷산계곡 산성터널 부근에서 빨치산의 기습을 받았다.
빨치산들은 때를 맞춰서 선로에 티엔티를 장치하여 열차를 전복시켰다.
여기에서 열차를 전복시킨 것도 빨치산 외팔이 부대였다.
이들은 열차의 기관사와 조수를 사살한 다음, 군수품을 약탈해 가지고 도주하면서 열차에 불을 질렀다.
이들 빨치산 외팔이 부대는 열차에서 양민들을 납치해 갔다.
양민들 대부분이 열차에서 빼어낸 탄약을 운반하는데 이용당했다.
가을에는 지방 도처에서 많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음력으로 9월 9일.
마을 사람들은 소란한 난리통에도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는 이가 많았다.
김현주 제1소대장과 김규현 제2소대장은 90명의 대원을 이끌고 출동하였다.
지사면과 삼계면에서도 각각 30명씩의 대원들이 출동하여 1백50여명이 되었다.
둔남면 특동대원들은 임실경찰서의 유격대 다음으로 선발대가 되어 접근해 가고 있었다.
도로변 군데 군데에는 전신주들이 넘어져 있었다.
공비들이 유선을 차단하기 위해서 전신주를 넘어 뜨리고 절단한 게 분명 했다.
섬진강 하류는 벌써부터 무시 무시한 바람이 감돌고 있었다.
빨치산 전북도당이 준동하고 있는 회문산이 바라 보였다.
특동대원들은 여기 저기서부터 공비 소탕작전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빨치산은 빨치산대로 빈 곳을 노리고 있었다.
이날 밤, 공백 상태를 틈타서 빨치산 부대는 남원군 덕과면으로 들이 닥쳤다.
이들은 지리산을 근거로 한 빨치산 부대였다.
윤혁중이 이끄는 지리산 공비 1개연대병력이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에 나타나서 약탈을 하기 시작하였다.
빨치산 부대의 윤혁중 연대장이라는 자는, 임실면 오정리에서 살던 자로서 이 지방의 지리와 사정에도 밝은 편이었다.
김동석 임실군 둔남면장의 집 대문이 거칠게 흔들리면서
문열라우!
하는 사내의 투박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집 안에서는
예! 나갑니다!
하는 여인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리고, 그 뒤를 이어 고무신 잘잘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인은 부들 부들 떨리는 손으로 대문의 빗장을 열었다.
따발총을 든 사내들이 안마당으로 우르르 몰려 들었다.
동무는 누구요?
따발총을 잔뜩 움켜쥔 사내가 김현중을 가르키면서 물었다.
김현중이 올시다.
김현중?
예.
동무의 책상서랍에서 권총 실탄이 나왔는데 이거 동무 것 앙이요?
아닙니다.
당신, 특동대원 앙이요?
아닙니다.
거짓말 마이소!
특동대원이면 이러고 있겠읍니까? 벌써 도망을 갖거나 숨었겠지요.
실탄은 어디서 난 거야?
육군에 있던 동생이 두고 간 겁니다.
어느 부대 소속이야?
전사했읍니다.
전사?
네.
........................
아까부터 마당에 원진(圓陣)을 치고둘러 서있던 다섯명의 빨치산 처녀들이 인민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들은 철저히 유물론을 주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오히려 철저히 미신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노동자의 천국을 부르짖으면서 노동자 농민의 생지옥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이 땅 위의 천국을 운운하면서, 불안과 공포가 계속되는 테러와 약탈과 살상을 일삼고 있었다.
그들은 집집마다 총을 들이 대고는 닥치는 대로 약탈을 하였다.
그들 공비들은 밤 3시경에 마을을 떠나가기 시작했는데, 이들에게 끌려간 부락민이 50여명에 달했다.
이들은 공비들이 총뿌리를 들이대고 강요하는 대로 짐을 진채 소처럼 말없이 끌러가는 것이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가는 것처럼, 그들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가는 곳이면 거기에는 반드시 비명과 아우성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사람이 죽어 나간다거나, 소를 빼앗긴다거나 하여, 그야 말로 마을은 온통 수라장이 되는 것이었다.
놈들이 천황봉으로 갔다데!
천황봉에서 머물지 않을 걸.
거기서 소 두마리를 까먹고 지리산으로 들어 갔다데.
그럼 내 소도 죽었겠구만!
그까짓 소가 문젠가? 사람도 죽어 가는 판인데!
소가 불쌍혀서 그러네! 쟁기질도 잘 허는 손디..................
.........................
소천 양반이 돌아와서 이얘길 혀 주는디, 굉장허다고 그러데!
뭐가 굉장혀?
사람죽이는거 말이라! 워디선가 끌려온 면장의 부인을 구덩이 속에 밀어 넣고는 돌로 쳐 죽이는디, 차마 눈 뜨고는 못볼 일이라고 그러데!
그게 어디 사람이 헐 짓인가?
끔찍스런 일이제!
면장은 용케도 안잽힌 모양이야!
그런데, 고 면장부인이 남편 대신으로 지리산 속에서 죽었단 말인가?
거기꺼정 끌려가서 죽엇제!
나도 하마트면 죽을뻔 혔다고!
워쩌서 너같은 놈이 다 죽는다냐?
따발총대로 쿡쿡 찔러쌈선 무조건 손들어라고 허등만!
그래서?
인제는 죽는갑다하고 겁이 덜컥 나서 어쩔 쫑을 모루것는디, 총대로 가심팍을 쿡쿡 찌름선 이새꺄! 손들어! 허등만.
그래서?
그래 겁이 덜컥 나서 두 손을 버쩍 쳐들었제!
그러니까 고놈은 나더러 , 요새끼는 시계도 안찼구나! 하면서, 또 한번 총대로 쿡 제기등만.
그러고는 괜찮았어?
괜찮은 게 뭐야? 그 담엔 성분이 뭐냐고 묻덩만.
그래서?
성분이 뭐라고 물어 본개, 성분도 모르냐 면서 귀뺨을 갈기등만.
그래서!
뭐하는 놈이냐고 허길래, 남의집 머슴 산다고 혔제.
그래서?
그렁개, 요상시럽게도 고놈이 손을 쑥 내밀등만. 그런디, 고개 말이라, 내 손을 잡고시나 백택없이 흔들어 대면서 노동자 농민의 영웅적인 혁명을 머라고 머시라고 싸분대싸는디 도통 무신 말이 무신 말인지 알수 가 없더라고.
두 사람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이들은 잠복 초소 앞을 지나고 있었다.
산에는 눈이 하얗게 쌓여 있었다.
주위는 점점 어두워 가고 있었다.
차거운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대원들은 외투깃을 걷어 올리곤 하였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 불이 그리워 지기 마련이지만 불을 피울 수는 없었다.
한규야아! 한규야아!
씨잉 씽 불어오는 바람 소리 속에서 노파의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노파의 부르는 소리는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 오고 있었다.
노파는 턱 밑까지 숨이 차올랐다. 가파른 오르막 길을 오르면서 그녀는 몇번이고 발을 멈추면서 헐떡이곤 했다.
초소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대원들 중에서 한 대원이 초소 밖으로 얼굴을 내밀면서
어머니!
하고 불렀다.
공한규 대원이었다.
한규야!
초소까지 다가온 노파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머니!
악아!
날씨가 찬데 여기까지 왜 나오십니까?
날이 춥길래 너를 찾아 왔다.
네에?
날이 차서 널 조깨 녹여 줄라고 왔다!
!.......................
왜 그러냐? 안되냐?
아, 아닙니다!
따순데서 조깨 녹이고 오니라!
어머니! 어서 들어가십시오! 저는 괜찬습니다!
네 친구들 때문에 그러냐?
아닙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네 친구들이랑 같이 가자!
안됩니다. 초소를 비울수는 없읍니다.
안되면 너라도 조깨 다녀 오니라!
안됩니다.
이 에미만 따순 방에 있을 수가 없다. 몸을 조깨 녹이고 오니라!
노파가 혼자서 돌아갈 생각을 안하자, 대원들은 공한규 대원에게 다녀 오기를 권했다.
한규야. 다녀와라.
어머님도 모셔다 드릴 겸해서 잠간 다녀오라니까!
대원들도 이구동성으로 모두들 권하기 때문에 공한규도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미안하네, 나 곧 다녀옴세.
하고 말한 다음 노파의 뒤를 따랐다.
집에 당도한 노파는, 아들이 방으로 들어가자 이내 부엌에서 술상을 차려서 들어왔다.
술상에는 통닭이 놓여 있었다.
김이 물씬 물씬 피어 오르는 게 먹음직스러웠다.
공한규 대원은 동지들이 마음에 걸렸다.
씨잉 씽 불어오는 바람 소리를 떠올리면서 그는 동지들을 생각했다.
어머니!
왜 그러냐?
이 닭을 가져가고 싶습니다.
네 친구는 염려 말고 어서 뜯어라.
어머니!
또 한마리를 잡을랑개 열려말고 뜯어라!
어머니 감사합니다!
공한규는 안심하고 술을 마셨다.
그리고 닭다리를 쭉 찢어 들고 뜯기를 시작했다.
노파는 아들의 먹는 모습을 대견스러운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요, 아랫목에서 몸을 조깨 녹여라.
노파가 이불을 펴고 있을때
문열어 문열라우!
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노파는 깜짝 놀랐다.
노곤한 잠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려던 공한규는 잠이 펄쩍 달아났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불렀다.
어머니! 저는 헛간으로 숨을 테니 염려 마시고, 이 술상을 치우십시오!
공한규는 말을 마치자 바람처럼 뒤안으로 돌아갔다.
안절부절 못하던 노파는 술상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노파는 술상을 조심스럽게 치웠다.
문 열어! 문 열라우! 빨랑 문 열지 못하가서?
대문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문짝이 떨어져 달아날 것만 같았다.
예에, 나갑니다.
노파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떨려 나왔다.
문 빨랑 못 열가서?
노파가 조심스럽게 대문의 빗장을 풀었다.
집에 누구 있지비?
없어요.
할마씨 거짓말 하기요?
참말로 없어요.
분명히 이 집으로 왔는데 거짓말 하기요?
나갔어요.
뭐라구? 나갔어?
예에..........
이 늙은 할망탕구가 거짓말만 하는군.
집을 샅샅히 뒤져라!
찾아뵈겨요............
공비들이 집 안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뒤지기 시작하였다.
마루 밑 부엌 아궁이, 변소, 벽장속, 장독, 두주, 헛간, 천정, 나뭇단 할 것없이 샅샅이 살펴 나갔다.
노파의 마음은 조마조마 하였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러나 그녀는 태연하려고 애썼다.
아들이 헛간의 나뭇단 속에 숨어 있을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그녀는 태연해야 했다.
헛간으로 들어간 공비가 나뭇단을 가리키면서
이 속에도 없겠소?
하고 노파의 표정을 살폈을 때, 노파는
집에는 아무도 없다니까요. 자, 얼마든지 뵈겨요!
하고 말하면서 위에 있는 나뭇단을 제껴 보였다.
알겠오!
따발총을 든 사내가 성큼 밖으로 나섰다.
기뻤다.
뛸듯이 기뻤다.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지식을 살렸다는 희열이 가슴 속에서부터 온 몸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대문 쪽에서 시끌짝하는 소리가 들리고, 총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약오른 살무사 같은 빨치산들의 눈에 뭐든지 보이기만 하면 사살되는 판국이었다.
뒤안을 돌아온 노파가 부엌으로 들어섰을 때
저기닷!
저기, 번득였다!
하는 소리와 함께 부엌께로 총탄이 빗발쳤다.
노파가 힘없이 쓰러졌다.
우루루 몰려들었던 발자국 소리가 다시금 우루루 몰려 나갔다.
노파의 이마와 어깨쭉지에서 붉은피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그 피는 부엌 바닥을 도르르 흘러서 아궁이 앞에 고이기 시작하였다.
노파의 피가 어리는 부엌 바닥 그 아궁에는 조금전에 통닭을 삶던 불이 아직까지도 살아 남아서 노파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궁이 속으로 뭐가 튀어 들어갔는지 포르스름한 연기가 실다랗게 피어나오고 있었다.
이 노파를 사살한 자들은, 회문산으로 퇴각하는 길에 들이닥친 빨치산 부대였다.
임실군 둔남면 특동대원 공한규의 슬픔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는 꺼익 꺼익 울면서 날마다 술을 퍼마셨다.
공한규 대원 뿐만 아니라, 동료 대원들의 슬픔도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저러다간 큰 일 나겠어!
미치고 환장 할 일이지!
저렇게 밤낮없이 술만 퍼마시면 정말로 미칠지도 몰라!
천만에! 술을 마셔야지 술을 안마시면 오히려 더 미쳐 죽을 일이지!
그렇겠군!
그렇고 말고!
저럴땐 세월이 약이지!
너무도 아픈 상처야!
깊은 상처지! 꼭 뻬리깡의 이야기와 같더라니까.
뻬리깡이라니?
뻬리깡도 모르나?
처음 듣는 소린데?
처음 듣겠지............이 세상에선 귀한 새니까.
뭐? 귀한 새?
그래, 귀한 새야!
갈수록 모르는 소리만 하는군!
알고 싶은가?
그만 두게.
내가 이야길 하지.
그는 술을 쭈욱 들이키고는 잔을 권하면서
이 세상에선 부기 드문 새의 이름이야!
하고 이야기를 꺼내었다.
사내는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어서 입 안으로 몰아넣고는 우물거리면서 술주전자를 기울였다.
그만! 그만!
술이 찰찰 넘쳤다.
어서 들어!
너무 많은데........
내, 이야길 하지.
해보라니까.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물던 시절에 말야. 뻬리깡이라는 새가 살고 있었다네.
옛이야기가 아니고, 요즈음 이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난 일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말야.
암튼지 그 뻬리깡은 물고기를 먹고 사는 새였는데, 어느 한 해는 고기 흉년이 들어서 죽게 되었다네.
그런데 그 어미 뻬리깡은 새끼들을 먹여 살리려고 여러 날을 헤매 다녔으나 해변에서는 한마리의 먹이도 구할 수가 없었다네.
결국 굶어 죽게된 어미 뻬리깡은 입을 짝짝 벌리고 아우성을 치는 새끼 뻬리깡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의 부리(입)로 자기의 배를 갈랐다네. 자기의 창자를 잘라서 새끼들을 먹여 살려 놓고는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지. 알겠는가?
사내는 종발에 담긴 탁주를 절반쯤 들이키고 나서 안주를 들었다.
안주래야 깍두기 한 종발이었다.
알겠네. 지금 자네가 무얼 말하는지 그 뜻을 알것 같네.
............비단 공한규 어머니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 예수 공자 석가 쉬바이처 등의 인물들도 실은 뻬리깡의 사랑을 말한게지.
............그래서 귀한 새라고 했었군.
자네 오수(獒樹)의 유래를 아나?
국민학교 시절에 어느 해 방학책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오수가 지금은 임실군 에 속해 있지만, 옛날에는 남원 땅 이었다네.
일찌기 십일개소의 역원이 설치되어 중요한 오수도찰방역(獒樹道察訪驛)이 있었다던 곳이지.
고려때 처음으로 나왔던 견분곡(犬墳曲)의 발상지가 바로 여기야. 견분곡에 얼킨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지.
지금은 임실군 지사면 이지만, 고려 때는 거찰현(居察縣)이라고 불렀지.
여기에 김개인(金蓋仁)이라는 사람은 개를 무척 사랑했는데 그 개도 역시 마음씨 고운 주인을 무척 따랐던 모양이야.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만취가 되어 가지고 풀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일대에 불이 났다네. 주인이 타 죽게 된 것을 알게된 그 개는 근처의 냇가에서 온 몸에 물을 적셔 가지고 딩굴어서 불을 껏다네. 그런데 얼마를 딩굴었는지 주인이 깨어 보니 그 개는 불에 타 죽었단 말이시.
주인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죽은 개를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고 지팡이를 꽂아 놓았는데, 이상하게도 그 지팡이에서 잎이 돋아나고 큰 수목이 되므로 그 때부터 이곳을 개나무마을, 다시 말해서 이 마을을 가리켜 개獒字 나무樹子, 오수(獒樹)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야.
그 개도 뻬리깡이 아닌가.
충성스런 뻬리깡이지.
이제 그만 일어날까?
일어나야지.
두 사람은 주막을 나왔다.
앞산의 무성한 소나무 숲이 눈을 끌었다.
숲은 하얀 눈더미를 이고 있었다.
앞을 보면 앞산, 뒤를 보면 뒷산,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눈에 익은 산이요, 정이 들대로 든 강산이었다.
바로 눈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초소를 향하여 둔덕길을 걷고 있었다.
이들은 마음도 냇물처럼 어디론지 흘러가는 것만 같았다.
뻬리깡!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뻬리깡은 무성한 숲처럼 언제까지나 푸른 마음을 지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모든게 다 변한다 하더라도 공한규 대원 어머니의 뜨거운 모성애는 영원히 변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정과 내 국가, 내 민족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들고 향토를 지키는 마음이 변해서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은 채 꿋 꿋이 서있는 소나무 숲이 자꾸만 눈여겨 보아지는 것이었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쏘는 하늘을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 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ㅡㅡ咸亨洙의 詩<해바라기의 碑銘>에서ㅡㅡ
'지역이야기 > 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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