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홍류동계곡!!!

지역이야기/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조국행진곡 - 빨치산 處女(처녀)들 -

흘러 가는 2020. 9. 2. 12:35

 

 

<1980년대 오수전경>

  쥑여라아 ㅡㅡ 쥑여라아 ㅡㅡ

  여자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여름밤의 서늘한 공기를 소란스럽게 뒤흔들고 있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소리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소름이 끼치는 기분 나쁜 소리였다.

  여자들의 고함소리는 북부산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쥑여라아 ㅡㅡ 쥑여라아 ㅡㅡ

  모서리가 처지는 소리였다.

  난데없는 빨치산 부대의 출몰과 함께 여자들의 고함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철도 경찰은 더욱 무서운 불안과 초조감에 몸을 떨었다.

  빨치산들의 사격은 그칠줄을 모르고 계속되었다.

  오수역사(獒樹驛舍)의 유리창이 와장창 깨어지고 무엇인가 둔중한 물체가 테이블 위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빨치산들의 부산한 움직임이 눈으로 걸려 들었다.

  대부대였다.

  단 두명의 전투경찰의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는 대부대였다.

  3백여 명쯤 되어보이는 대부대였다.

  쥑여라아 ㅡㅡ 쥑여라아 ㅡㅡ

  쥑여라아 ㅡㅡ 쥑여라아 ㅡㅡ 

  북부산 위에서는 여자들의 쌕쌕한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쥑여라가 아니라 윅여라 였다.

  그 고함 소리는 오수 역전 광장 일대를 이상 야릇한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는 듯한 소리였다.

  콩튀듯 총소리 사이사이로 울려오는 빨치산 부대의 꽹가리 소리는 듣는이로 하여금 더욱 무서운 공포를 느끼게 하였다.

 

  깽맥 깽맥 깽맥깽

  깽맥 깽맥 깽맥깽

 

  소리는 점점 가까와 오고 있었다.

  멀리서 간간히 울려오던 꽹가리 소리는 바로 탱자나무 울타리 뒤에서 울려오는 것만 같았다.

 

  깨갱 깨갱 깽깽깽

  깨갱 깨갱 깽깽깽

 

  꽹가리 소리는 점점 더욱 크게 들려오다가 마침내는 가까운 곳에서 고막을 소란스럽게 어지럽히는 것이었다.

  큰 일 났다!

  큰 일이야!

  후퇴하자!

  여길 터주면 오수가 위험해!

  그렇지만 안되겠어!

  여길 터주면 안돼!

  우물쭈물하다가 붙잡히면 총살이야!

  총살?

  그래, 총살!

  두사람은 어둠속에서 슬금 슬금 뒷걸음으로 물러서기 시작하였다.

  꽹가리 소리는 더욱 가까운 곳에서 소란스럽게 울려 오고 있었다.

 

  깽맥 깽맥 깽맥깽

  깨갱 깨갱 깽깽깽

 

  어둠속에서 시커먼 사람의 그림자들이 탱자나무 울타리 사이를 비집고 뛰어 오면서 민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기름을 뿌려!

  예!

  총소리는 뚝 그치고 꽹가리 소리만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여기 저기서 빨치산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불을 질러!

  빨치산 타격대장인 듯한 사내의 말이 떨어지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역사는 불이 붙어 번지기 시작했다.

  역사는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고, 이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치솟는 불길사이 사이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빨치산들이 보였다.

  가자!

  타오르는 역사의 불길을 등지고 빨치산 타격대는 시내로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윅여라아 ㅡㅡ 윅여라아 ㅡㅡ

  윅여라아 ㅡㅡ 윅여라아 ㅡㅡ

  어두운 밤 하늘높이 불길이 치 솟자, 북부산에서는 여자들의 함성이 더욱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빨치산 처녀들이었다.

  에잇! 저놈의 소리!

  박종수 특동대장은 종대(鍾臺) 위에서 불타는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철경이 길을 터준 모양이다!

  박대장은 혼잣말로 중얼거리면서 나팔(스피커)을 챙겨 들었다.

  역전 광장이 환하게 보였다.

  대원들은 들으라! 대원들은 들으라! 빨치산 김정기 부대가 역사를 불지르고, 국민학교로 들어오려 하고 있다! 대원들은 들으라! 대원들은 영단(도정공장)쪽으로 가서 공비들을 격퇴시켜라! 영단쪽에서 공비들을 격퇴시켜라!

  박대장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총성이 울렸다.

  치열한 총격전이 시작되었다.

  오수의 역전에서부터 시장쪽으로 일직선의 도로가 나 있었다.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빗발치듯 오가는 총탄이 보였다.

  빨간 불꽃으로 가열된 탄환이 날아들고 있었다.

  대원들은 들으라! 대원들은 들으라! 대원들은 국민학교 후문으로 집중 사격하라! 국민학교 후문으로 집중사격하라!

  말을 마친 박대장은 양철 나팔을 입에서 떼면서 역전 근처를 살펴본다.

  오수국민학교로 들어오려던 빨치산들이 대원들의 집중공격을 받고는 다시 방향을 바꾸는게 보였다.

  공비들은 변전소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박대장은 빨치산 부대가 시내로 들어오지 않고 변전소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다.

  빨치산 김정기는 임실군당 타격대장이었다.

  그는 바로 이 고장 사람이었다.

  김정기는 임실군 지사면 사람으로 빨치산이 되어 있었다.

  빨치산 김정기 부대가 변전소 쪽으로 움직이는듯 하더니 갑자기 펑ㅡ 하는 소리와 함께 변전소가 불길에 휩싸였다.

 

  다르륵 다르륵

  다르륵 다르륵

 

  고지와 초소에서 대원들이 기관총을 쏘아 대는게 보였다.

  상신촌 초소에서 기관총을 쏘던 대원이

  큰 일났다!

  하고 그 옆의 조수에게 말했다.

  실탄이 왜 안나간 다지?

  하고 조수가 말하자

  고장이야!

  하고 사수가 말했다.

  어떡허지?

  저 놈들이 눈치 채기전에 철수하자!

  그래야 겠군!

  두 대원은 기관총과 실탄 상자를 걸머지고 내달리기 시작하였다.

  박대장은 초조 하였다.

  기관총 한대가 고장났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원 가운데 일부의 주력부대가 삼계면 원통산 합동작전에 지원을 나가고, 여기에 남은 대원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적은 인원을 가지고 삼백여명의 공비들을 물리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잃지 않았다.

  빨치산 부대원의 수는 3백여명이 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무장을 갖춘 인원은 40여명으로 판단 되었기 때문이었다.

  김현주 소대장을 위시해서 30여명의 용감한 유격대원들이 삼계면 지역으로 지원을 나갔기 때문에 그는 팔 하나가 빠져 달아난 것처럼 허전함을 느끼면서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임실군 둔남면 오수의 고정규 지서장이 남은 대원들을 모두다 잠복 근무를 내보내자고 하였을 때, 오늘밤에는 영단(도정공장)에서 자도록 하자고 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수에 남아 있는 대원들이 모두 변방으로 잠복을 나갔다면, 역전에서 부터 밀려오는 공비들을 누가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적은 언제나 우리의 빈 헛점을 노리고, 또 찌를게 뻔하기 때문에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나미가  뚝 떨어지는 여자들의 "윅여라아" 소리는 들리지 않았으나, 변전소를 불지른 공비들이 다시금 시내의 중심부로 파고 들어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기세는 꺽이지 않고 있었다.

  둔남면 특동대의 주력부대가 원통산작전을 나가고 없기 때문에 박대장은 겁이 덜컥났다.

  대장님!

  왜 그래!

  황점용이가 쏘던 삐아루가 고장이 났읍니다.

  알았어! 엠원소총이라도 줘!

  넷!

  박대장은 또 다시 종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또 다시 양철나팔을 꺼내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대원들은 들으라! 대원들은 들으라! 시내로 들어 오려는 공비를 예배당 쪽에서 사격하라!

  조금만 있으면 국군이 들어온다. 남원에서도 국군 백명이 들어오고, 임실에서도 2백명이 오고있다.

  각 대원들은 움직이지 말고 자기의 위치에서 사수하기 바란다!

  박대장은 양철 나팔을 입에서 떼면서 적정을 살폈다.

  예배당 부근에서 쏘아 나가는 대원들의 총탄이 삼계교 쪽으로 퍼부어지고 있었다.

  빨치산 부대의 선발대가 주춤하더니, 도주하는게 눈에 띄었다.

  후유ㅡㅡ

  박대장은 안도의 한숨을 내어쉬면서 목덜미로 흐르는 땀을 닦다.

  박대장은 시계를 드려다 보았다.

  새벽 다섯시 반이 지나고 있었다.

  1952년의 여름은 이와 같은 총격전과 소함소리와 꽹가리 소리, 그리고 양철 나팔에 입을 틀어박고 외치는 온갖 소리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꼬리를 감추고 새로운 광명의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박대장이 심호흡을 하면서 밝아오는 동녘 하늘을 바라보고 있을때, 종대 밑에서

  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대장은 소리나는 종대 밑을 굽어 보았다.

  거기, 그 종대 밑에서는 한 사람의 대원이 올려보고 있었다.

  왜 그런가?

  빨치산이 남아 있읍니다.

  뭐? 빨치산?

  네! 빨치산이 남아 있읍니다!

  알았다!

  박대장이 재빠른 동작으로 종대를 내려와서는

  어디있어?

  하고 묻자 그 대원은 선듯 앞장 서서 걸으면서

  김갑두씨 집 안방에 있읍니다!

  하고 서슴 없이 말했다.

  안방에?

  네, 안방입니다.

  빨치산이 안방에 있다니............?

  박대장은 고개를 약간 갸우뚱 하면서 걸음을 재촉하였다.

  대원들은 어느새 김갑두씨 집을 완전히 포위하고 있었다.

  김갑두씨의 대문을 들어선 박대장은 권총을 빼어 들고는 안방 문을 벌컥 열어 제쳤다.

  손들엇!

  문고리가 우지끈 떨어지면서 안방 문이 열리자 박대장의 표정은 금방 굳어졌다.

  담장 너머에서는 대원들이 안방을 향하여 일제히 총을 겨누고 있었다.

  빨갱이 보다도 더 나쁜 놈!

  박대장의 손에 쥐어진 권총이 부들 부들 떨렸다.

  그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어찌 할 수가 없었다.

  저 놈을 끌어 내!

  박대장의 호령이 떨어지자, 대원들이 우르르 마루 위로 뛰어 올라서, 방구석에서 마치 사시나무 떨듯 오들 오들 떨고 있는 두 사내를 끌어 내었다.

  두 사내는 무명 바지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네 놈들이 철도 경찰이야?

  두 사내는 사시나무 떨듯 오들 오들 떨고 있었다.

  국가의 녹을 먹는 놈들이 이게 무슨 꼴이야 임마! 우리들은 돈 한푼 안 받고도 밤새도록 싸웠는데 네 놈들은 이게 무슨 꼴이냐, 임마!

  한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마치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강아지 처럼 두 사내는 처량한 몰골을 처들다가는 연신 굽신 거리면서 박대장에게 애원을 하고 있었다.

  박대장은 변전소 옆의 헛간으로 성큼 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거기 헛간에는 빈 지게가 비스듬히 누워있었으며, 제법 튼튼하게 생긴 지게 작대기가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박대장은 그 지게 작대기를 집어 들고 나오면서

  ..........네 놈들은 말이닷! 네 놈들은 맛을 단단히 보여 줘야 돼! 역사를 놈들에게 내주고 도망친 놈들이 살기를 바래? 그런 놈들이 어딨어? 어디에 또 있느냔 말여, 임마! 하고 말하면서 소리를 벌컥 질러대었다.

  그리고 그는 지게 작대기로 두 사내를 사정없이 후려치고 있었다.

  아이쿠우! 아이쿠우!

  한 사내는 등을 들고 허리를 뒤틀면서 아우성을 쳐대고, 또다른 한 사내는 어깨쭉지를 뒤틀면서 짐승의 신음 소리 같은 괴상한 소리를 게워내고 있었다.

  ............네 놈들이 역사와 변전소를 태운 거나 마찬가지야! 책임을 지겠나?

  ...............................

  이놈의 자식들 왜 말을 못해! 네 놈들은 죽여야 돼! 총살이야! 총살! 빨갱이 보다도 더 나쁜 놈들 같으니라구!

  !..............................

  철수를 했으면 다시금 끝까지 싸울 생각은 안하고 안방으로 숨어?

  !..............................

  오수 역장이 어떤 놈들에게 죽었는데, 네 놈들만 살겠다고 숨는 거야? 임마!

  ...................

  박대장은 말끝마다 연신 지게 작대기를 들어올려 사정없이 후려지는 것이었다.

  아이고오! 아이고오! 나아죽네에!

  두 사내는 비명을 지르면서 나딩굴었다.

  박대장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지게 작대기가 연거퍼 내려쳐질 때마다 두 사내는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곤 하였다.

  무서운 태질이었다.

  박대장이 사정없이 내려치는 서슬에 뎅겅하고 지게 작대기가 부러져 나갔다.

  아이쿠우! 아이쿠우! 이번만! 아니쿠 우! 제발 이번만! 한번만!

  두사내의 아우성 소리와 신음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서 터져 나왔다.

  그 소리는 대문 밖을 빠져 나오고, 골목길에 까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대장님!

  사내가 부러진 지게 작대기를 붙들고 박대장을 올려 본다.

  그의 눈에서는 까닭모를 눈물이 어려 있었다.

  대장님 어떻게 된 영문인지를 저도 잘 모르겠읍니다. 그 년의 가시내 들이 윅여라 윅여라고...........대장님! 씨꺼멓게 밀려오는 그놈의 꽹가리 소리에............속이 떨려서 그만, 그만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읍니다! 대장님 용서해 주십시오!

  사나이가 그렇게 간이 약해서는 안돼! 알았어?

  네! 앞으로는 잘 싸우겠읍니다.!

  박대장은 부러진 지게 작대기를 내어 던졌다.

  그리고는 주위를 휘이 둘러 보았다.

  대원들이 하나 같이 그의 거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덧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김갑두씨 집의 돌담 위로 아침 햇살이 내려 번지고 있었다.

  가자!

  박대장이 대문을 나서자, 대원들도 그의 뒤를 우르르 따라 나섰다.

  나도 그 계집애들 소리는 질색이야!

  간이 덜덜 떨릴 정도입니다.

  밤이라서 그래!

  녀석들의 소리는 별거 아닌데 , 그 계집애들 소리가 무섭단 말야!

  아직은 나이 어린 처녀들 같던데.

  열 여덟살에서 스무 서너살이 제일 많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죽을 짓을 하고 다니지!

  그야 사상으로 비뚫어진 사람이 개중에는 있지만 그건 극소수에 지나지 않고, 대부분이 여맹에 가입을 하였다가 그 놈들의 공갈에 넘어 간 게지!

  공갈이라니?

  잡히기만 하면 무조건 죽는다니까 잡히지 않기 위해서 그 놈들이 하자는 대로 끌려 다니는 게지.

  어리석군.

  여자들은 단순해. 영리한 것 같아도 실상은 미련해서 결국 속아 넘어 가기 마련이거던.

  너무 순진해도 탈이군.

  순진한게 아니라 어리석은 게지.

  같이 어울리다가 애를 배는 경우도 있지.

  뭐? 애를 배?

  그럼.

  큰 일이군.

  뭐가?

  애를 배었으니.................

  당장 죽는 판이데 그게 문제야?

  하긴 그렇군...............

  철없이 날 뛰는 애들이야.

  한창 꽃 같은 나이에..............

  앞 날이 창창한데 말야.........

  불쌍한 애들이야 자술하면 살텐데 말이지.

  그걸 말이라고 해?

  그저, 내 누이 같아서.........,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하는 말이지..........

  불쌍한 계집애들이야!

  암, 불쌍하고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