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비산비야 非山非野!!

지역이야기/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조국행진곡 - 아비규환(阿鼻叫喚)-

흘러 가는 2020. 7. 24. 18:48

-오수초등학교 1980년대-

  쾅쾅! 하는 폭발음이 울렸다.

  그것은 오수국민학교 운동장에서 터저나오는 굉음이었다.

  그리고는 이내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다.

  운동장 여기 저기에서는 순식간에 피의 난장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로 눈 깜짝할 순간의 일이었다.

  아이구우! 아이구우!

  아이고오! 나죽겠네에!

  아이쿠우! 어머니이!

  사람살려! 사람살려!

  숨막히는 비명이 운동장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금방 숨넘어가는 소리 나뒹굴며 자지러지는 소리, 이러한 비명들은 듣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눈 뜨고는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참극이 벌어졌다.

  아침 해가 고요하게 내려 비추어 오기 시작하던 오수국민학교 운동장은 학생들의 폭발물 사고로 인하여 삽시간에 피범벅으로 수라장이 되었다.

  1950년 10월 15일 아침의 사건이었다.

  전주로 통학을 하던 이 지방 출신의 학생들이 일찌감치 오수국민학교 교정에 모여 있었다.

  학생들은 그동안 북괴의 불법 남침에 의한 6.25의 희생자가 얼마나 있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한 뜻도 있었지만, 그 보다도 북괴군 잔당들을 전향 시키기 위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오수 운동장에서 두 시간의 제식훈련을 받고 난 다음에 사건은 터졌던 것이었다. 이때 오수국민학생들은 운동장 가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그런데 이 집회가 끝나기도 전에 몇몇 학생들이 숙직실에 쌓아둔 포탄을 가지고 서로 던지고 받고 하다가 결국 누군가가 땅에 떨어뜨리자 폭발하여 이와 같은 참극이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푸른 빛깔의 윤기 자르르한 포탄은 학생들의 눈을 끌었고, 그들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호기심이 많은 학생들은 이 괴상한 물체를 가지고 서로 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는 이 괴상한 물체를 가지고 서로 빼앗고 던지고 밀치고 하다가 폭발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오수국민학교 운동장에서는 그 사고 즉시 숨을 거둔 학생도 있었다.

  크게 다친 학생들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지르면서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뜻하지 않은 폭발물 사고에 놀란 학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어느 틈에 오수국민학교의 박종규선생이 뛰어오고, 연락이 되었는지 자경대원들이 달려오면서부터 이내 들것이 준비되었다.

  둔남면 자경대원들은 몸을 잽싸게 움직였다.

  자경대원들의 손에 의해서 들것에 실려가는 사망자와 중상자들을 논여겨 보던 도로변의 주민들은 얼굴을 돌리면서 저마다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에그! 가엾어라! 쯔 쯔 쯔!

  뉘집 아들잉가 에미가 보면 미치것제라우, 잉?

  워디 미치기만 허것능가, 이 사람아! 펄펄 뛸 일이제! 펄펄 뛸 일이라!

  폴딱 폴딱 뛰다가 까물쳐 죽것지라우, 잉?

  그렁게 말이요! 줄을 일이제! 죽을 일이라! 복통을 치고 죽을 일이라!

  참말로 절통헐 일이제!

  세상에! 요런 일이 워디 또 있다요!

  글매 말이요!

  우리 아들은 괜찮은 개비지만, 저 학생들은 저 모양이니 이 일을 워쩌면 좋끄라우! 잉?

  워쩔쫑을 모루것끄만이라우!

  암튼지 살려야제라우! 죽어뻐렸으면 워떻게 헐 수 없지만, 목숨이 쪼깨(조금)라도 붙었으면 워쩌던지 살려야지라우! 잉?

  암, 워쩌던지 살려야제! 살려야만 허고 말고!

  그야 그렇제! 아무리 벵신이 된다고 혀도 죽는 것 보담은 낫제! 암, 낫고 말고!

  그야 워디 죽는데다 대것소?

  글매 말이요.

  조앙님네 헌테다가 물 떠놓고 빌어야 소용이 없제라우, 잉?

  누가 애를 낳는당가? 사람 죽는판에 조앙님네가 다 뭔가, 이 사람아! 벵원으로 가야제! 벵원으로! 워쩌던지 얼푼(얼른) 벵원으로 가야제!

  시방 벵원으로 가기는 가는 모양인디, 여그서는 워쩔쫑을 모룬개비요, 잉?

  워쪘든지 살려얄텐디 워쩔쫑을 모루것끄만이라우!

  마을 사람들의 근심어린 이야기를 뒤로 하면서, 수십명의 자경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었다.

  하얗게 뻗어 나간 신작로 위로 붉은 피가 주루루 주루루 흘러 내리고 있었다.

  달아나고 없어진 몸둥아리의 부분이라든지, 부러진 팔 다리가 보는 이들의 시선을 끌어 당기고 있었다.

  들것 밖으로 삐죽이 나와서 덜렁 덜렁 흔들거리는 다리!

  달랑 달랑 흔들거리는 팔뚝!

  그리고 어디론지 떨어져 달아나버린 발목을 찾지 못한 채, 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발목!

  이 징상스런 발목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못하게 하였다.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찟어지는 마음의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처참하게도 복부 밖으로 삐죽이 튀어 나온 창자 위로 가을날의 햇살은 유난스럽게도 번쩍이면서 부서져 내리 꽃히고 있었다.

  그것은 맑고 밝게 번쩍이면서도 바보스러우리만큼 태연한 빛살이었다.

  참으로 청명하면서도 바보스러운 하늘이었다.

  총명하고 우둔함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하늘이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말없이 내려다 보고만 있는 하늘이었고 햇빛이었다.

  하늘의 눈빛은 여전히 높푸르고 가을날의 햇살은 여전히 평화로은 빛살을 내리 비추고 있었다.

  그런데 이 땅에는 어찌하여 이와 같이 처참한 인생비극이 일어나고 있단 말인가!

  이 어린 것들의 죽음!

  이 어린 것들의 아픔!

  이 어린 것들의 아우성을 그 누구에게 말하며, 이 죄없는 어린 것들의 희생을 누구에게 변상 시켜야 한단 말인가!

  우리 아들도 나갔었는디!..............

  여기 저기서 비보를 듣고 허겁지겁 달려 나온 학부모들이 행여나 자기의 아이가 다치지나 않았나 하고 하나 하나의 들것이 지나칠 때마다 눈여겨 보곤 하였다.

  여러 개의 들것에 실려 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뚫어지게 주시하면서 겁먹은 눈을 굴리던 한 노파가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소리를 꽥 질렀다.

  그 소리는 듣는 이로 하여금 뭐라고 꼬집어 말 할 수 없는 야릇하게 놀라운 감정을 울렁거리게 하였다.

  노변의 군중 속을 비집고 허우적거리면서 헤쳐 나온 노파가 들것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소리 소리 지르고 있었다.

  아이고오! 이놈아아! 아이고오! 이노옴아아!

  들것 주위를 따라가던 대원들과 학생들이,

  진정하십시오! 이러시면 안됩니다! 병원엘 빨리 가야 합니다!

  하고 말하면서 들것에 질질 끌려가는 노파를 떼어놓자, 그 노파는 일어다가는 다시 엎어지고, 힘없이 꼬꾸라졌다가는 다시 기를 쓰고 일어나면서, 자식이 실려가는 들것을 뒤따르곤 하였다.

  연신 가뿐 숨을 헐덕이면서 도로면에 주저앉은 이 노파는 마침내 두 손으로 풀잎을 뜯다가는 이내 땅을 치면서 울부짖었고, 땅을 치면서 울부짖다가는 다시금 풀잎을 뜯으면서 울부짖는 것이었다.

  아니고오! 이놈아아!

  아이고오! 이놈아아!

  네가 워쩌다가, 아이고오!

  아이고오! 나 죽것네!

  아이고오! 후유, 나 죽것써어!

  두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텅텅 두들겨대면서 울부짖던 노파가 마침내는 흙바닥에 벌렁 까무러쳤다.

  노파를 붙들고 부추기며 위로하던 학생들이 노파의 까무러치는 것을 보자 당황했다.

  아저씨! 아저씨! 큰 일 났어요!

  학생들이 소리치자 대원들이 달려왔다.

  대원 중에서 누군가가 노파 앞에 등을 들이대면서 소리쳤다.

  자 엎혀!

  한 대원이 노파 앞에 육중한 체구를 들이대면서 학생들을 향하여 외치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노파를 부축하여 대원에게 엎혀 주었고, 그 대원은 노파를 업자 마자 병원으로 내달았다.

  한편, 줄을 이은 들것이 병원에 다달았을 때는 해가 중천에 올라와 있었다.

  금암리 병원의 김명석 의사는 난색을 보였다.

  의사 선생님! 어떻게 안될까요?

  약이 없어서 큰 일 났읍니다.

  목숨을 건져 주십시오.

  가능한데로 우선 지혈을 하고 있읍니다만, 약이 없어서 여기서는 안되겠읍니다.

  약을 구할 수는 없을까요?

  놈들(괴뢰군)이 모조리 털어 가버리고 전혀 없읍니다.

  큰일이군요!

  이러고 있을때가 아닙니다. 촌시가 급하니 남원으로 가보십시오.

  남원요?

  네. 거기에는 약이 있을지도 모르겠읍니다. 빨리 옮기십시오. 일초가 급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어쩌는 수가 없었다.

  약품이 없는 병원에서 의사와 입씨름을 더 해보았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 대원들은 다시 서둘렀다.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부상자들은 들것에 실려서 도로변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구급차도 없었다.

  그래서 즉시 떠나지를 못하고, 노변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데, 한 대의 군용차가 뿌연 흙먼지를 일구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던 학생들이 일제히 외이--하고 소리를 질렀다.

  대원들이 도로를 막아 서면서 손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스톱!

  군용 트럭이 멈춰 서면서 문이 열리고, 운전병이 얼굴을 내밀면서 웬일이냐고 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폭발물 사고로 인해서, 학생들이 요 모양이 되었읍니다!

  안됐군요!

  미안하지만 남원까지만 태워 주십시오!

  이 차론 곤란 한데요.

  분 초를 다투는 일입니다. 제발 좀 살려 주십시오! 부탁합니다!

  대원들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은 운전병은 뭣인가를 잠깐 생각 하는듯 하더니

  알겠읍니다. 어서 태우십시오.

  하고 말하면서 대원들에게 손짓을 하는 것이었다.

  고맙습니다.

  대원들은 군용 트럭 운전병에게 머리를 굽신했다.

  운전병이 고마웠다.

  대원들은 몸을 신속히 움직였다.

  들것에 누워 있는 중상자들이 군용 트럭에 실리자 차는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들것 위에서 몸부림 치면서 아우성을 치던 중상자들의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기어 나오고 았었다.

  참으로 처절한 광경이었다.

  물! 물! 물! 물줘요! 물! 물!

  흔들리는 군용 트럭 속에서 부상자들은 미친듯이 물을 찾고 있었다.

  처절하게 울려 나오는부상자들의 목소리는 대원들의 가슴을 찟어 놓을 듯이 뒤흔들어 놓고는 자동차 소리에 깔리곤 하였다.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부상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대원들은 뿌옇게 올라오는 흙먼지를 온통 뒤집어 쓰면서도 문득 부상자들을 눈여겨 보고 하였다.

  대원들도 차체가 움직이는 대로 심하게 흔들리우고 있었다.

  군용 트럭은 드디어 남원에 닿았다.

  부상자들은 병원으로 옮겨지고 있었는데, 흙먼지를 뒤집어 쓴 그들의 몰골이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의사들은 난색을 보였다.

  안되겠습니다.

  네? 뭐라구요?

  안되겠습니다.

  안되다니요?

  약이 없읍니다.

  약이?

  네.

  여기도 마찬가집니까?..........

  마찬가지라니요?

  ..........아, 아닙니다.

  출혈도 너무 많이 했고...........

  ?

  이젠 틀렸읍니다. 수술은 계속하고 있읍니다마는 모두 살릴 수는 없읍니다. 세 사람은 가망이 없읍니다.

  ?

  의사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장현(마장현)은 의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의사의 입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조금 전 의사의 말은 분명한 사형선고였다.

  틀려요?

  하고 마장현 대원이 캐어 물었을 때 의사는 분명히

  네!

  하고 대답했다.

  전혀 가망이 없읍니까?

  참 안되었읍니다. 

  여기서도 북괴군들이 수탈해 갔읍니까?

  약 말씀인가요?

  북괴군들이 아니면 누가 모조리 쓸어 가겠읍니까?

  그야 그렇지요.

  ........................

  ........................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이 소용없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할말이 없었다.

  한 사람은 의사요, 또 한사람은 별동대원(자경대의 핵심대원)이지만, 어린 학생들의 비참한 죽음을 지켜보는 이 순간, 의사와 대원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 가족으로 밀착되어 있었다.

  너 라는 단수 와 나라는 단수가 각각의 둘이 아닌 우리라는 복수속에 용해되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로 들어가고 있었다.

  몇 사람의 대원들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서 병실로 들어간다.

  의사는 부상당한 학생들을 한 사람 한사람의 손목을 잡은 채 맥을 짚어보고 있었다.

  뛰지않은 맥이었고, 싸늘하게 식어버린 손목이라는 것을 대원들은 직감할 수 있었다.

  돋보기 안경 넘어로 굳어진 의사 표정 이라든가, 잠잠하게 가라앉은 학생들의 모습에서 검은 죽음의 그림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의사의 시선은 창밖의 먼 하늘에 못박혀 있었다.

  무엇인가를 찾아 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굳어진 의사의 표정을 살표보던 마장현이 의사의 곁으로 다가서면서,

  선생님! 정말로 가망이 없겠읍니까?

하고 묻자, 의사는 머리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어 보이고는, 병실의 문을 열고 복도를 걸어 나가고 있었는데, 의사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져 들리지 않을 떄까지 마장현은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도립병원에도 약이 없다니..........!

  마장현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철모르는 어린 것들..........., 이세상에 나와서 피어 보지도 못하고, 봉오리로 올라 오다가 꺽어져 버린 꽃봉오리들.........., 귀여운 이 조국의 새싹들이 북괴군이 쌓아둔 포탄으로 인해서 하루 아침에 이슬로 사라지다니................

  뜻하지 않았던 폭발물 사고로 인하여 다섯명의 학생들이 벌써 목숨을 잃었고, 수많은 학생들이 약이 없어서 죽음을 기다리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치를 떨었다.

  북괴의 불법남침에 의한 6.25는 수많은 학생들의 목숨을 앗아 갔으며, 죽지 않고 살아난 학생들일지라도 그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동족상잔 이라는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인하여, 부모를 잃고 전쟁고아가 된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으며, 학도병으로 출전하여 전사했거나, 병신되어 돌아온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받고 구김없이 성장해야 할 나이에 전쟁의 극한 상황이 몰고 온 불안과 공포의 전율 속에서 얼마나 많은 어린 학생들이 비뚤어진 성격을 형성케 하였는가.

  붉은 무리가 휩쓸고 지나가는 곳에는 반드시 피흘리는 비명과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다.

  지상에 알려지지 않은 사건들이 이 땅에는 얼마든지 있다.

  강화의 반공애국지사들은 공산당원들의 살인 방화 약탈 감금 폭행 몰수 등 이루다 헤아릴 수 없는 만행에 분노한 나머지 분연히 일어나서 반공투쟁에 가담하였다.

  유엔군이 상륙하기 하루 전날인 9월 27일에 북괴군은 이들, 애국지사들을 소위 반동분자라는 이름의 죄명으로 대량학살을 실시했다.

  이들은 상업조합(현재는 한일은행)의 창고에 구금했던 반공애국지사들을 밤11시에 끌어내어 포박한 다음, 강화의 서북단으로 향하였다.

  이 고장에서 과거에 군수를 지낸 바 있는 이병년 옹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병년 옹은 눈물이 글썽해 가지고 지난 날의 뼈아픈 수모를 이야기한 일이 있었다.

  ............여러 날 동안 구타당하고, 기아에 지칠대로 지친 지사들은 삼십여리나 되는 산길을 밤중에 끌려 갔었지요.

  ................................

  구월 이십 팔일 새벽 두시경에 양민들은 양사면 인화리 해변의 산골짜기에 당도했었읍니다.

  포승이나 철사줄로 손목을 묶이운 채 끌려간 일흔 세사람의 양민들을 여기에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강제로 몰아 넣고는, 총으로 삽으로 곡괭이로 도륙 시키고, 강제로 끌려나온 부락민들의 손으로 생매장을 시킨 다음, 미리 대기해 두었던 배를 타고 북한 지역으로 도주 하였읍니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지워지지 않는다.

  하얀 머리를 해풍에 휘날리면서 그 날의 참상을 말하던 노인의 목소리도 좀처럼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 목소리는, 세월이 가면 갈수록 오히려 더욱 분명하게 우리들의 가슴속으로 부쳐 오게 되는 것이다.

  73명의 양민들이 한구덩이 속에서 몰사 죽음을 당하다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가슴 아픈 일이었다.

  포승으로 팔목을 묶이우고, 철사줄로 두손을 꽁꽁 묶이운 채 반항조차도 할 수 없이 일렬 종대로 머리를 수그리고 서서 기울어 가는 잔월을 밟으며, 죽음이 기다리는 삼십리 산길을 오르는 그들의 슬픔 모습을 지울 수가 없는 것이다.

  세월이 가면, 살아 남은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서 제사를 지낸다.

  공동의 무덤을 말끔히 단장하고, 비석을 세운다.

  비석에는 비문과 함께 죽은 자들의 이름 석자씩을 새겨 놓는다.

  젊은이들이 죽어간 시체들을 묻어 주던 촌노들이 해마다 한 차례씩의 제사를 지낸다.

  하얀 갈대 우거진 산허리에, 하얀 백발을 해풍에 휘날리면서, 두 손으로 공손히 잔을 받쳐 올리고 향을 피운다.

  언제 어디서 간직 했는지, 하얀 무명 두루마기들을 챙겨 입은 백의 민족의 노인들이 하얗게 나와서는 푸른 조국의 하늘 아래서 제사를 지내고, 6. 25의사변 이후에 태어난 전후세대의 학생들이 이러한 광경을 지켜 보면서 통일의 노래를 부른다.

  노인들은 어린 학생들의 노래에 울고, 아이들은 노인들이 쓰다듬는 비문에 운다.

  세월이 또 얼마를 흐르면, 백발을 해풍에 휘날리면서 술을 따르던 노인들이 죽고, 노인들이 간 그터 위에서 통일의 노래, 승공의 노래를 부르던 학생들은 청년이 되어 비문 앞에서 향을 피우게 된다.

  그리하여 강령산 자락에 세워진 비문은 해마다 외롭지 않고, 조국의 하늘은 언제 까지나 푸른 빛으로 존재한다.

  조국의 푸른 하늘을 항상 머리에 인채 침묵으로 서 있는 비문은 자자손손 길이 길이 증언할 것이다.

  눈으로 본대로 증언할 것이다.

  귀로 들은대로 증언할 것이다.

  혼신으로 체험한대로 증언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무더기로 살해한다.

  같은 피를 이어받은 같은 민족끼리 서로가 서로를 살해한다.

  인간이 인간을, 동족이 동족을 무더기로 살해한다.

  왜 그럴까?

  그들도 인간의 탈을 썼다면, 손톱만큼의 양심은 남아 있을 텐데 무엇 때문에 그럴까?

  도대체 어째서 그럴까?

  무슨 이유로 공산주의자들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학살하는 것일까?

  대량학살!

  그것은 그들의 마음 속에 증오의 사상이 있기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마음 속에 자리잡은 증오의 사고방식이 잔인한 행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모든 사물을 모순되고 대립되는 것으로만 착각하고, 이것을 투쟁이론에 결부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계 도처에서 투쟁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양민들을 대량으로 무자비하게 학살하고도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못하게 하는 유물론 사상이 의식 속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기인 되는 것일까.

  그들의 살인행위는 주로 마르크스 투쟁이론에서 기인된다.

  그의 변증법적유물론 이라는 모순된 철학이나, 유물사관 이라는 왜곡된 역사학이나, 자본론이라는, 보자기로 구름잡는 식의 경제학설 등은 모두가 한결같이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소위 공산주의 승리, 노동자의 천국을 위한 자본가의 말살이라고 하는 허무맹랑한 목표를 위해서 하나의 꽴맴지로 꾐맴질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을 말할 때, 인간은 본래 동물과 같은 존재(아베마 또는 유인원)로 보고, 이 동물적 존재가 사회적 노동을 통해서 진화하고 발전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사회적노동, 세계적화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적화혁명대열에 동참하지 않는 자는 동물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다고 철저하게 규정한다.

  이와 같이 모순된 이론으로 인하여 인하여 그들의 의식구조는 유물론적으로 완전히 굳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죽인다 해도 양심의 가책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 생각하는 정도를 지나서 철석같이 믿고 있다. 광신적인 신앙처럼 믿고 있는 것이다.

  오수국민학교의 폭발물 사고로 인해서 작지않은 학생이 희생되었다.  이날 마백진, 조형익, 김판동, 등 세 학생이 옮기는 도중이 아니면 병원에서 사망했으며, 김중현, 김완준, 이춘수 외 8명의 학생이 부상을 당했다.

  대원들은 죽은 학생들의 시체를 오수로 옮겨야 했다.

  여기에서도 시체를 운반할 차가 없었으므로 대원들은 거리로 나와서 지나가는 자동차를 붙들어야 했다.

  달려오는 한대의 스리쿼터를 향하여

  스톱!

하고 누군가가 손을 들자, 차는 멈춰 섰다.

  핸들을 잡은 흑인 병사가 허어연 이를 유난스럽게도 희게 드러내 보이면서

  웨어 라 유 고-잉?

하고 어디로 가느냐고 묻자, 박종규 선생이 나서면서

  고 잉 투 오수!

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박종규 선생은 다시금 흑인 병사를 올려 보면서

  핼프 미!

하고 도와 달라는 말을 했다.

  흑인병사는 자기에게 시선을 모으고 있는 학생들과 대원들, 그리고 들것 위의 시체들을 굽어보더니, 알겠다는 듯이 머리를 끄덕여 보이면서 시체를 속히 실으라고 말했다.

  댕큐! 댕큐! 

  학생들이 여기 저기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였다.

  흑인 병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시체는 차에 실려졌다.

  스리쿼터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점점 속력을 내다가 마침내는 가로수 잎사귀를 뒤흔들면서 내달리고 있었다.

  차는 털털거리면서도 줄기차게 달리고 있었으나,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다.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차체가 심하게 털털거릴 때마다 말없는 시체들은 흔들렸고, 다시는 깨어 날 수없는 잠속으로 침몰하는 학생들의시체를 바라보게 되는, 산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살풍경하게 마구 흔들리는 것이었다.

  착잡하게 뒤얽힌 기슴속에서 요동을 치며, 들끊는 심장이 일어나 방망이질을 할수록 그들은 더욱 입을 봉하고 마는 것이었다.

 

       목숨은 때묻었나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광년의 현암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에 젖어 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 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한 많은 시공이 지나

       모양할 수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

          ------- 申瞳集의 시<목숨>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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