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기 소대장이 삼계면 덕계리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다.
빨치산들이 쏜 다발총 탄환이 엉덩이 뼈에 박혔던 것이다.
빨치산들이 마치 양떼를 몰듯, 부락민들을 강제로 끌어내어 산으로 몰아 올리고 있었다.
썅! 간나새끼! 빨랑빨랑 올라가!
빨랑 빨랑 오르지 못하가서?
빨치산들이 다발총을 들이 대면서 협박을 하게 되면, 부락민들은 정말 순박한 양떼처럼 순순히 산을 오르는 것이었다.
열 다섯병의 둔남면 자경대원들이 그 양민들을 산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가는데, 이것을 알게된 빨치산들이 사격을 가해 왔다.
타르륵ㅡㅡ타르르그ㅡㅡ
딱꿍ㅡㅡ딱꿍ㅡㅡ
40여명의 빨치산들은 맹렬한 기세로 총탄을 퍼부어 대는 것이었다.
그들, 공비들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허망하게 앗아가는 것이었다.
수많은 양민들은 그들의 무자비한 총탄에 이스락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모래알 같은 전설을 이땅에 뿌려놓고 농부들은 파리 목숨보다도 더 허무하게 이스락처럼 잇달아 죽어가고 있었다.
빨치산들이 휩쓸고 지나가는 부락은 폐허가 되고 마는 것이었다.
특히 빨치산 여자들은 사내들 보다도 더욱 세밀하게 뒤져 가는 게 그들의 생리였다.
빨치산 사내들은 불을 지른다거나, 살상을 한다거나, 약탈한 소를 몰고 간다거나, 쌀 가마를 뒤져서 가져가는게 보통이지만, 빨치산 계집들은 보다 세밀히 파고 들었다.
그들은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면 뭐든지 앗아같다.
전등이 없는 시골에서 헝겁에 석유기름을 적셔서 불을 붙여 가지고 장롱 속, 살강 밑 할 것 없이 샅샅이 뒤져서 앗아간다.
참깨, 들깨, 참기름, 들기름, 간장, 된장, 고추장, 소금, 고추가루, 실, 바늘, 헝겊, 단추, 칼, 가위, 톱, 낫 할 것 없이 눈에띄이는 것이면 모조리 쓸어 가기 때문에 이 지방의 주민들은 공비들이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혀를 내두르는 것이었다.
빨치산들이 휩쓸고 지나갔다 하면, 거기에는 반드시 살인과 방화와 약탈이 벌어지므로 여기 저기서 통곡이 터져 나오는 마을은 살풍경하게 폐허가 되는 것이었다.
구석마다 곳마다
부서진 꿈의 그늘
까마귀도 잠들은 폐허엔
풀벌레만 홀로
낙조(落照)를 슬퍼 하는데..........
말하라
전쟁의 폐허
천 만 길 애끓는 네 가슴.
ㅡㅡ文相明의 詩<廢墟>에서ㅡㅡ
동짓달로 접어들면서부터 둔남면 자경대는 삼계지서에 15명의 대원을 파견하는 지원을 해주기 시작하였다.
대원들은 1개월 동안을 3일 간격으로 출동하고 있었다.
둔남면을 중심으로 하여 그 인근 지역인 지사면과 삼계면을 비롯하여, 지방도처에서 지서가 확보되자, 둔남면 자경대는 보급지원을 해주기 시작하였다.
둔남면(오수)의 뒤를 이어, 지방 도처에서 자경대가 잇달아 조직이 되고, 활기를 되찾으면서 빨치산의 보급과 이동 루트를 차단하게 되면서부터는 공비들의 준동도 이에 비례하여 더욱 심해져 가고 있었다.
자경대가 무장을 갖추고 더욱 조직화되어 감에 따라, 도처에 흩어졌던 공비들도 다시 규합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부락을 기습하여 소, 돼지, 염소, 닭 등등의 가축, 또는 의복이나 식량 할 것 없이 닥치는대로 약탈해 가는가 하면, 부녀자들을 겁탈하기도 하고, 양민을 학살하기도 했으며,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짐을 지워서 끌고 가는 것이었다.
공비들은 산악지대에서 대병력을 만들어 가지고 지서를 습격하는 양상으로 그 규모나 방법이 달라져 가고 있었다.
대부대를 만들어 가지고 휩쓸고 다니는 공비들의 준동을 막기 위해서는 아군들도 전투 능력을 확보해야만 하였다.
전라북도 지방의 임실군 덕치면에 위치한 회문산과 삼계면에 위치한 원통산에 근거지를 둔 빨치산의 조직은 주로 임실군당 순창군당 및 정읍군당과 고창군당 등이 규합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 회문산은 빨치산 조직의 근거지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전북도당이 몰려 있기도 했다.
빨치산 조직들은 회문산을 중심지역으로 하여, 국사봉, 백연산, 원통산, 용골산, 성수산, 팔공산, 문수산, 추월산, 지리산 등지를 이동 왕래하면서 온갖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공비들은 자기들 나름대로의 계획을 세우면서 파괴와 약탈행위를 일삼고 있었다.
임실군 자경대는 대통령 긴급명령에 의해서 그 명칭이 특동대로 바뀌어 졌다.
그런데 둔남면 특동대는 사무실을 별도로 가지고 있으면서 경찰의 지원 요청이 있을 때에는 언제든지 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해도 12월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초소와 고지를 재정비하고, 조직을 재편성했는데, 그 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대 장 박종수
제 1 중대장 김현주
부 중 대 장 박해룡
제 2 중대장 김옥기
부 중 대 장 박순배
총 무 부 장 장상순
감 찰 부 장 김규현
감찰부차장 강석순
동 원 부 장 한덕봉
동원부차장 김완두
이무렵, 이 고장의 주민들은 초소와 고자를 만들기에 온갖 심혈을 다 기울였다.
초소는 오수의 변전소 부근에서부터 시작되어 U자모양을 이루고 있었는데 초소의 위치는 정미소 위, 삼계교 옆, 중학교 옆, 관월교 옆, 합수정 위, 봇도랑 위, 금암교 옆, 수문 위, 상리 앞의 언덕, 철교 옆, 건널목 옆, 통운창고 옆, 철로변등지였으며, 해월산에 남고지가, 북부산에 북고지가 각각 자리를 잡게 되었다.
해월산의 남고지는 U자 모양의 초소들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으며, 북부산의 북고지는 역시 U자형의 초소들의 읫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그 타원형의 방어 진지는 적을 방어 하기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초소와 고지는 주로 뗏장과 모래가마니로 만들어져 있었다.
야간의 보초 근무는 전후만으로 나누어 행해지고 있었는데, 전반은 오후 5시부터 밤12시 까지이며, 후반은 밤12시부터 아침 6시 까지였다.
겨울날의 밤 바람은 칼날같이 매서웠다.
국방색 잠바 깃 사이로 파고 드는 북서풍은 대원들의 목덜미를 움추러들게 하였다.
김현주는 초소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손전등으로 손목시계를 비추어 보았다.
밤 10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다.
동(東)과 서(西)로 가로 누워 있는 시멘트 다리 사이로 싸늘한 겨울의 밤 바람이 씨잉 씨잉 울면서 지나치고 있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한 겨울의 찬바람이 통과하는 하천, 이 남북으로 트인 하천을 경계로 하여 동쪽에 위치한 마을은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요, 서쪽에 위치한 마을은 임실군 둔남면 오수리였다.
쾅!
쾅쾅!
갑자기 총소리가 울려 왔다.
여러 발의 총소라가 터지고 조명탄이 올랐다.
하늘이 밝았다.
밤 하늘로 치솟는 무수한 별똥 부스러기들, 그것은 꼬리를 길게 끌면서 서서히 내려오는 것이었다.
이쪽에서도 총성이 울렸다.
하천 둑의 초소에서 대원들은 일제히 사격을 시작하였다.
대원들은 어둠 저쪽 건너편으로 눈을 부릅뜬채 방아쇠를 당기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천 일대는 삽시간에 불을 뿜는 총소리로 뒤범벅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저쪽 금암교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총소리 사이 사이로 간간히 들려오고 있었다.
다르륵 ㅡ
따따따 ㅡ
딱궁 ㅡ
쀼웅 ㅡ
금암교의 이쪽과 저쪽, 양쪽에서 기관총도 불을 품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하천 일대는 삽시간에 총성으로 뒤범벅치고 있었다.
다르륵 ㅡ 딱궁 ㅡ 따따따 ㅡ 쀼웅 ㅡ
저쪽의 금암교 건너편에서 이쪽으로 향하여 외치는 소리가 또 다시 들려 왔다.
국군이다아! 쏘자 말아라!
아군이다! 사격을 중지하라!
이쪽의 총소리가 멈칫해지자, 건너편에서의 고함 소리는 더욱 분명하게 들려 왔다.
국군이다아! 쏘지 말아라!
대원들이 깜짝 놀랐다.
자기의 귀를 의심하기도 헀다.
국군이라니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맹렬히 불을 뿜던 금암교의 양쪽에서는 사격이 멈춰지고, 서로의 확인이 이뤄지자 국군들이 다리를 건너오고 있었다.
큰 일 났다!
큰 일이라니!
국군이 죽었어!
죽어?
그렇다니까
계급이 뭔데?
특무상사야!
안됐구만!
안됐어!
초소에서 대원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국군의 시체는 옮겨지고 있었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었다.
국군을 인솔하고 온 장교는 서슬이 퍼랬다.
군모와 양어깨에 소위 계급장을 달고 있는그의 눈은 번득였다.
오수지서의 문을 밀치고 들어온 그가 지서주임을 향하여
네가 주임이지?
하면서 다짜고짜로 마구 치고 박는 것이었다.
그의 눈에서는 분노와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듯 했다.
그는 군화발로 지서주임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어이쿠우!
주임은 아픔을 견디고 있었는데, 그는 국군 상사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육군 소위의 행패를 참는듯 했다.
박대장은 의자에 걸터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벼란간 눈을 번쩍 떴다.
그는 부글 부글 끓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면서 눈 앞의 육군 소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의 명찰을 본 그는 비로소 그가 민소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박대장의 시선을 의식한 민소위가 이맛살을 찌푸리면서 박대장에게 대들었다.
당신은 뭐야?
나? 사람이야!
직책이 뭐냔 말야?
나 특동대장이야!
특동대장?
그래, 특동대장!
왜 말을 퉁명스럽게 하는 거요?
당신부터 고치시오! 첫 마디에 반말이 뭐요!
정말 이러기요?
당신이 틀렸오. 당신들이 잘못했으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일이지, 어디서 화풀이를 하는 거요?
여기서도 공비를 막기 위해서 진을 치고 있으니까, 사전에 연락병을 보내고 올일이지, 아무 연락도 없이 들어오다가 당해놓고, 이제 와서 무슨 행패를 우리에게 부리는거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눈길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눈과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이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부하를 잃은 분노를 터트리려고 하는 민소위요, 또 한 사람은 이 고장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일어선 박종수 특동대장이었다.
박종수 둔남면 특동대장은 이제 32세의 젊은 나이였으나, 코 및 양쪽으로 수염을 기르고 있어서 군복을 입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는 그의 풍채는 누가 보아도 그럴듯 했다.
지서의 문이 열리고 , 소령 계급장을 단 장교가 들어왔다.
남원에서 올라온 양소령이었다.
민소위는 양소령을 보자, 부동자세로 경례를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양소령은 민소위의 말을 다 듣고 난 다음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런 사전 연락도 없이 부대를 이동해 온 것은 어디까지나 네 잘못이야! 네가 잘못해놓고 어디서 분풀이를 하는거야! 함부로 날뛰지 말고 자중하라고! 자중해! 알겠나?
네, 알겠읍니다.!
양소령은 지휘봉을 든 채 사무실 안을 한 바퀴 휘익 둘러 보고는 바람 같이 나가는데, 민소위는 그의 뒤에서 부동자세가 되어 경례를 붙이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 11사단 7중대 소속인 육군 특무상사의 시체는 북부산에서 한덕봉 동원부장의 손에 의해서 화장 되었다.
산봉우리에서 울리는 병사의 구슬픈 트럼펱 소리와 함께 그 특무상사는 이름도 없이 한 줌의 재로 사라져 갔다.
작은 실수가 엄청나게 큰 사건을 유발했다.
하얀 신작로 위에서 피를 흘리며 나동그라진 특무상사의 그 청춘의 잔해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간다.
우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것은 그 육군 특무상사의 죽음만이 아니다.
그의 죽음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게도 책임 회피로 끝나게 될 때, 그의 죽음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 가치는 더욱 모호해질 뿐 알 수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닌가.
가치를 알 수 없는 죽음, 애매 모호한 죽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을 수 있겠으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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