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비산비야 非山非野!!

지역이야기/조국행진곡(祖國行進曲) - 실록소설

조국행진곡 - 푸른 행진

흘러 가는 2020. 7. 23. 23:19

 

중현(김중현)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전단 뭉치와 포스타를 말아 쥐고 집을 나섰다.

  그는  아직 까지도 어둠으로 가득 찬 북부산 허리, 공동묘지가 있는 오솔길을 더듬거리며 걸어 나아가고 있었다.

  산자락을 다 내려간 그는 논두렁을 지나고, 고양이처럼 살금 살금 역사 앞을 지나면서 우선 바람벽에 포스타를 부치고 전단지를 뿌렸다.

  검은 학생복과 검은 모자들이 잽싸게 움직이는 것을 어둠속에서도 서로는 잘 알아 볼 수 있었다.

  가벼운 운동화 차림으로 나선 학생들은 국민학교 옆 도로를 지나서 예배당 앞을 마악 지나려던 참인데 정미소께에서 후래쉬 불빛이 번쩍이면서 저벅 저벅 들려오고 있었다. 

  이 때 학생들은 잽싸게 예배당 모퉁이로 몸을 숨긴채 어둠 저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후레쉬 불빛은 신작로 이쪽 저쪽으로 번쩍이면서 예배당 앞을 지나고 있었다.

  빨갱이다!

  누군가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인민군 순찰병이야!

  북괴군이란 말이지!

  그래 북괴군이야!

  우리가 처치해 버릴까?

  우린 총이 없어서 안돼!

  그야------------------

  자, 이젠 나가도 되겠다.

  학생들은 다시금 어둠 속을 움직였다.

  이번에는 정미소의 판자벽에다가 풀칠을 듬뿍 뜸뿍 한 다음 포스타를 붙였다. 그리고는 전단지도 신작로 여기 저기에 뿌려 놓았다.

  그리고는 몇 군데를 더 붙이고 뿌린 다음에 마지막으로 인민군 분주소로 통하는 골목으로 접어 들었다. 학생들은 분주소쪽의 동정을 살핀 다음 그 분주소의 옆 담이 서있는 신작로께로 전단지를 흩뿌려 놓고는 뒷몰의 철로를 넘어서 돌아왔다.

  전단지와 포스타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란 무궁화동지회에서 라디오로 청취한 것이었다. 그것은 일본방송에서 들은 내용으로서 새로운 소망적인 뉴스가 아닐수 없었다.

  그 당시에 무궁화동지회의 주멤버는 김해철, 마장년, 김을배, 정인탁 등이었는데, 주동자인 김해철은 이 가운데에 제일 연소자로서, 전라북도반공학생연맹 위원장 및 전주중학교 연대장을 지낸바 있는 애국청년 이었다.

  이들 무궁화동지회원들은 김해철의 집 뒷산에 굴을 파고는 그 굴속에 숨어들어서 일본 방송을 열심히 청취하던 끝에 9월24일에는 유엔군의 B29기가 우리나라로 출발 했다는 소식을 알아내게 되었고, 이 사실을 주민들에게 알리어 용기를 심어 주기 위해서 비밀리에 전단지를 인쇄하여 야간에 살포하였던 것이다.

  일본방송에서 청취한 내용대로 B29기는 북으로 날아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알아내었는지, 무궁화동지회의 주동자 김해철은 그 이튿날 전단지살포사건으로 인하여 북괴군에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리고는 이내 9월28일이 되었다.

  1950년 9월 28일

  괴뢰 인민군 패잔병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북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들의 행색은 볼품이 없었다.

  그들 대부분은 한복으로 변복을 하고 있었는데, 괴뢰군 복장을 한 그대로 산을 타고서 북쪽으로 도주하는 자들도 눈에 띄었다.

  유엔군의 기갑부대를 선두로 시작된 진격과 때를 같이하여 자유를 되찾은 기쁨과 감격을 감추지 못한 젊은이들은 새로운 용기를 되찾고, 지방 도처에서 우후죽순 처럼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양민들이 처참히도 학살되었으나 다행하게도 구속에서 풀려난 젊은이들의 기쁨이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을 향하여 소리라도 실컷 질러보고 싶었다.

  젊은이의 피는 바닷물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젊음의 피가 뛰면 뛸수록, 바닷물처럼 한없이 출렁거리면 출렁거릴수록 결국 복수심으로 불타오르는 것이었다.

  복수! 그렇다.

  자기의 향토를 사랑하고 조국의 장래를 염려하는 젊은이들은 더욱 무서운 복수의 일념으로 불타는 것이었다.

  배운 게 좀 있다고 해서 끌어가고, 땅 몇 마지기 좀 있다고 해서 끌어가고, 공무원 노릇 좀 했다고 해서 끌고 가서는, 죽이며, 끌며, 몰며, 했던 붉은 무리를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박종수와 김봉수는 참나무 몽둥이를 하나씩 만들어 가지고 거리로 나섰다.

  이들이 참나무 몽둥이를 만들어 가지고 거리로 나서게 된 것은 무기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공비들과 싸워서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곳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으로 패주해 가는 괴뢰군 패잔병들의 복장이란 말이 아니었다.

  그들은 대부분 평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무기는 보이지 않았다.

  옷 속에 권총이라도 숨긴 것을 알 수 있다면 단숨에 후려치고 나꿔채어 빼앗을 태세였지만, 어떤 놈이 장교이고, 어떤 놈이 사병인지를 알아 낼 수가 없었다.

  안되겠는데---------.

  안되다니?

  소총은 버린다 해도 권총만은 옷속에 숨겨 가졌을 텐데 말야. 어떤 놈이 어떤놈인지를 알 수가 있어야지.

  글쎄 말야.

  총이 있어야만 하는 건데--------,  총이 말야.

  총 가진 놈을 알기만 하면 되는 건데.

  두 사람은 은밀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귓속말로 소곤거리는 두 사람의 표정은 자못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놈들을 모조리 때려 죽이고 싶지만---------.

  빨갱이 놈들이라면 모조리 찟어 죽인다 해도 분이 다 안풀리겠지만, 그렇게 밉다고 해서 사람을 그렇게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네.

  뭐라고?

  왜 그래?

  너 강화 소식도 못들었나?

  강화라니?

  깜깜소식이군!

  무얼 가지고 그래?

  놈들이 말야!  일흔 세명이나 되는 양민들을 말이지, 한 포승줄에 주렁 주렁 엮어서 산중으로 끌고 가 한 구덩이에 몰아 넣고서는 파묻어 죽였단 말일세!

  뭐? 묻어 죽여?

  그래, 생매장이야! 따발총을 대충 갈기고, 숨이 끊어지지도 않은 사람들을 파묻어 죽였다니 생매장이 아니고 뭔가!

  !-----------

  또 다른 곳에서는 곡괭이와 삽으로 찍어 죽이면서 생매장을 시켰단 말이지!

  !-----------

  그래도 넌 성인군자처럼 미워해서는 안된다는 말이 나오나?

  !-----------

  놈들은 말야----------

  사내는  또 다시 입을 열었다.

  그는 격한 어조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무고한 양민들을 끌어내어 반동분자라는 죄명을 씌워 가지고 몰사 시켰단 말이시!

  그의 눈빛은 비탄에 젖어 있었다.

  소리가 너무 크군! 좀 조용 조용히 말하게!

  --------거기서 내 외삼촌도 살해당했네! 여라 날을 구타당하고 기아에 지친 몸으로 삼십리나 되는 산길을 밤중에 끌려 가서는 반항 한번 못하고 생매장을 당했단 말이시!

  강화 어디야?

  강화에서 서북단으로 양사면 인화리에 있는 강영산 이지!

  언제 그랬지?

  오늘 새벽!

  뭣! 오늘 새벽?

  그래! 오늘 새벽이야! 마을 노인들을 끌어내어 그들의 손으로 생매장을 시킨 다음에 미리 대기해 두었던 배를 타고서 북녘으로 도주했지!

  이와 같은 이야기를 주고 받는 두 사람의 표정은 침울했다.

  어딘지 모르게 일그러지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이들의 침울한 표정처럼, 구름 낀 하늘도 잔뜩 찌뿌린채 웅크리고 있었다.

  이 때 병정 놀이를 하는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왔다가는 다시 금암교 쪽으로 우르르 몰려 가고 있었다.

  그들, 아이들은 제각기 목총을 어깨에 메고 있었는데, 병으로 만든 수류탄을 허리에 차고 다니는 아니도 눈에 띄었다.

  때로는 아이들의 허리께에 매달려 있는 투명한 병속에는 마이싱 켑슐만한 대포화약이 가득 담겨 있는 것도 보였다.

  이 아이들의 수류탄이란, 유리병속에 대포화약을 가득히 넣고 심지를 연결한 것인데, 이 심지에 불을 붙여서 던지면 폭발하게 되는 것이었다.

  나쁜 놈들! 

  죽일 놈들이야!

  ----------

  ----------

  두 사람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이들이 들고 있는 참나무 몽둥이가 부들 부들 떨렸다.

  가슴 밑바닥으로부터 뜨거운 분노의 불길이 치밀어 오르는 것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살해한다.

  수 십명씩이나, 아니 때로는 수백 수천명씩 무더기로 살해한다.

  같은 피를 이어받은 같은 인간, 같은 민족, 같은 형제를 무더기로 학살하다니--------.

  사람을 마치 개나 돼지처럼 끌고 몰며 잔인하게 살해하다니----------.

  그들도 인간의 탈을 썼다면, 쥐꼬리만한 양심이라도 남아 있을텐데, 어찌하여, 무엇때문에 무자비한 학살을 일삼는 것일까.

  그것은 공산주의라고 하는 모순되고 대립된 철학, 투쟁적인 사상때문이다.

  투쟁적인 사상, 그렇다!

  모든 사물을 투쟁적으로만 보려고 드는 모순된 사상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이 죽음의 철학, 증오의 철학을 그럴듯하게 조작하고 있다.

  그들은 병아리의 부화과정을 설명하면서 노동자 농민의 적화혁명을 선동한다.

  그들은 , 계란의 부화과정을 보라! 계란의 껍질이 배자를 억압하고 있지 않느냐! 배자는 껍질로부터 억압을 당하면서 투쟁하여 오다가, 마지막 병아리가 되는 날 혁명을 일으킨다.

  보라! 껍질(자본가)로부터 억압과 착취를 당해 온 배자(노동자)가 혁명을 통해서 자본가를 타도하지 않은가. 보라! 자연과학에서 나타난 생물학적인 부화과정도 혁명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말하고 있지 않느냐? 고 하는, 이러한 이론은 공산주의자들의 그럴듯한 속임수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계란의 껍질이 배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그것은 배자가 병아리 될 수 있도록 보호하고 육성해준다.

  그런데 그들은 모든 사물을 자본주의 타도를 위한 수당으로 합리화 시켜 버린다.

  이것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 모순과 대립과 투쟁으로서 발전하는 게 아니라, 서로 조화로운 통일을 이루면서 발전한다고 보는 철학적인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마저 느끼지 못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적화 혁명이론 때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박종수는 김현주 김옥기 김규현과 함께 20여명의 우익청년들을 규합하여 자경대(自警隊)를 조직하였다.

  지방 각처에 산재하여 숨어 다니면서 암약해 오던 이들 우익 청년들은 자경대를 조직하는 식전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보는 애국가였고, 오랜만에 바라보는 바라보는 태극기였고,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흘려 보는 눈물이었다.

  울어도 울어도 또 다시 울 수 있었으니, 여기에 우는 자유가 있었고, 우는 보람이 있었다.

  하늘을 얼싸안은 물동이 에는

  어머니의 숨결이 어리듯

  우리들의 심장에는 언제나

  겨레의 혼이 고입니다.

  그러나,

  안개와 어둠에 싸여

  울고 있는 혼,

  당신은 거대한 눈물입니다.

  눈물은 눈물끼리

  얼키고 설키어

  고산식물의 뿌리에서 뿌리로,

  흘러내리고

  이름 모를 새소리와 바람소리는

  고로쇠 심장으로 스며들지만

  나와 당신의 메아리는

  만나지 못하고

  나와 당신의 목소리는

  껴안지 못하고

  벽과 벽이 마주보는

  골목에서

  아이들은 줄을 넘으며

  통일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나와 당신의 나라

  우리나라에 뼈저린 소원이 있습니다.

  안개와 어듬으로 정상을 가리운채

  하늘을 우러르는

  눈물속의 바램이 고여 있습니다.

  가슴 깊이 뿌리를 내리시는 어머니의 물을 마시며

  우리들은 기다립니다.

  참는 보람 알기 때문에

  등산광처럼 기다립니다.

  다시 만날 그날

  천지 밝아 올 날을 기다립니다.

  ------자작시(천지)의 후반부------

 

  유구한 역사를 두고, 인접국들로부터 물어 뜯 겨온 내 조국, 내 향토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땅을 끝까지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고 맹세하고 나선 동지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이 때 또 한 패의 아이들이 떼뭉쳐서 몰려오고 있었다.

 

  조금 전에 몰려갔던 20여명의 아이들이 제각기 나무 막대기에 끈을 단 목총을 메고서 삼 열 종대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아이들은 힘찬 동작으로 좌측 팔을 흔들고 발을 탕 탕 구르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면서 군가를 부르고 있었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야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 간

  전우야 잘 자거라

 

  가을 날의 햇살이 서산 마루로 물러가고 가막산 골짜기엔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어슬 어슬 내리기 시작한 어둠은 감자밭과 수수밭으로 기어들고 있었다.

  어둠은 더욱 무거운 정적으로 내려 누르고 있었다.

  어느 골짜기에선가 꿩의 울음소리가 두어차례 들려왔다.

  그리고는 또 다시 정적이 계속 되었다.

  침묵이 흘렀다.

  입 안 가득히 침이 고였다.

  김현주와 김옥기, 그리고 김규현 등의 자경대원 이외에도 열 대여섯명의 학생들이 어둠 저쪽 뒤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풀잎을 스쳐오는 발걸음 소리가 분명히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괴뢰군이다!

  현주의 뇌리를 번개처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현주와 옥기, 그리고 규현의 눈길이 거의 동시에 마주쳤다.

  눈짓으로 모든 이야기는 간단히 끝났다.

  이들, 대원들은 마치 쥐를 덮치려는 고양이처럼 잔뜩 웅크리고 있었는데, 괴뢰군 장교복을 입은 사나이와 그의 신변 간호병인듯한 두 여자가 그 곳을 지나치고 있었다.

  현주와 옥기는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날쌔게 달려들었다.

  두 간호병의 사이에서 걷고 있던 괴뢰군 장교의 발을 현주가 걸으면서 앞으로 쓰러뜨리는 순간 그 괴뢰군 장교의 손은 순간적으로 자기의 권총을 잡았는데, 이것을 본 옥기가 재빠른 동작으로 그 괴뢰군 장교의 권총을 나꿔채었다.

  이얏!

  하는 기압소리와

  으윽!

  하는 신음소리는 지극히 짦은 순간에 터져 나왔다.

  괴뢰군의 겨드랑이에서 따발총에서 꽹가리 모양의 탄창이 계곡 아래로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실로 눈 깜짝하는 순간에 전개된 광경이었다.

  자경대원들은 한 자루의 총도 없이 맨주먹으로 괴뢰군을 생포하였던 것이었다.

  괴뢰군 장교는 소좌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가자!

  현주가 말했다.

  ?

  권총을 빼앗긴채 양팔을 뒤틀리운 괴뢰군 소좌가 현주의 눈치를 살핀다.

  잠깐만 가자!

  하고 현주가 말하자

  네-------.

  하고 괴뢰군 소좌는 머리를 떨구었다.

  그는 몹시 피로해 보였다.

  가까운 마을로 끌려 내려온 남녀의 괴뢰군들은 새끼줄에 묶였다.

  아직까지 전투의 경험이 없는 대원들은 사람을 묶는 일에도 서툴렀다.

  대원들은 마치 개를 묶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을 묶고 있었다.

  계급이 뭐야?

  소좌디오.

  너희들은?

  간호병입니다.

  간호병?

  네-------

  어디서 오는 길이지?

  낙동강입니다.

  낙동강?

  네.

  너는 고향이 어디야?

  선천이디오.

  넌 괴뢰군 장교로서 어찌 혼자 가느냐?

  이덴 틀렸습니다..

  틀리다니?

  이덴 전황이 달라뎠습니다.

  알기는 아는군.

  .................................

  그런데 이런걸 어디서 났지? 

  삐라 말인가요?

  그래, 이 전단지 말야.

  낙동강에서 났습니다.

  그런데 왜 자수를 하지 않았지?

  자수를 하면 둑거들랑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덩말 기리티오! 덩말로 뒤기디 안카시오?

  괴뢰군 소좌의 눈길이 옥기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때 규현이가 간호병에게

  너희들도 그렇게 생각하니?

  하고 묻자, 그녀들은 거의 동시에

  네.

  했다.

  고분 고분해서 좋군.

  ..............................

  두 간호병은 아무 말이 없었다.

  살려 주십시오!

  괴뢰군 소좌가 말했다.

  말만 잘들으면 죽이지 않는다.

  규현이가 말했다.

  ?

  아, 참! 네 이름을 묻지 않았구나. 네 이름이 뭐지?

  조병규라고 합니다.

  조병규?

  네 조병규입니다.

  괴뢰군 패잔병 조병규는 겨우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하고 있었다.

  살려 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무엇이든지 하겠습니다.

  너희들이 그 등등하던 기세가 어찌 껵였지?

  던투력이 상실되었읍니다. 보급이 던혀 안되는데 어떻게 던투가 되가시오.

  안됐군.

  내레 왜 싸우는디를 모르가시오!

  몰라?

  네! 덩말 모르가시오! 무도껀 싸우라고 내리 모니끼니 벨수없이 싸우디만, 내레 동족끼리 왜 싸우는디를 모르가시오!

  나도몰라!

  네?

  사람들이 그렇게 잔인할 수가 있느냔 말이다!

  ..........................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자경대원들은 세 사람의 남녀 괴뢰군을 오씨의 재실에 감금하고 학생들로 하여금 지키도록 한 다음에 오수(獒樹)로 나와서 괴뢰군 분주소(농산물검사소 건물)를 점거하였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광명의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붉은 무리는 가고, 푸른 제복의 새로운 행진이 시작 되었다.

  메말랐던 강물이 다시 흐르고, 검푸른 산맥들이 구풀 구풀 춤이라도 추는듯 했다.

  하루의 낮과 밤을 사이에 두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었다.

  조국은 여전히 있었다.

  향토는 여전히 있었다.

  물결이 밀어 나아가듯, 임실군 둔남면 자경대원들은 힘차게 밀어 나아가고 있었다.

  이들, 자경대원들은 괴뢰군의 무기탄약보급기지로 사용되었던 오수국민학교 교정과 오수역전으로 향하였다.

  이들 둔남면 자경대원들은 괴뢰군들이 숨겨 두었던 각종의 무기와 탄약을 점검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는데, 그 수량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리하여 인접지역인 장수군 과 남원군 및 순창군 등지는 물론, 각 면의 자경대,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전라북도 전체에까지 널리 보급해 주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155밀리 야포 5문, 120밀리 야포 7문, 75밀리 야포 20문, 박격포 60문, 수류탄 50차량, 각종 실탄 100여차량 등을 관리하는 한편, 155밀리 포탄을 비롯하여, 여러 종류의 20여 차량을 자경대원들의 손으로 분해하여 오수역전과 북부산 등지에 메몰함으로써 관내 주민의 안전에 힘을 기울였다.

  각종의 포탄을 분해하는 데에는 괴뢰군 소좌엿던 조병규도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왜냐하면 조병규는 포탄을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자경대원들은 그를 통하여 포탄을 분해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하였다.

  특히 조병규로서는 자기를 처단하지 않고 살려준 자경대원들이 고마웠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포탄분해작업에 최선을 다하였다.

  이 무렵, 둔남면 자경대 내에 15명의 대원으로 별동대를 별도로 조직하였는데, 그 때가 10월3일 개천절 날이었다.

  이들 별동대원들이란 몸이 날세고 슬기로운 지방의 모범청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들은 가사도 돌보지 않고, 낮과 밤의 구별이 없이  오직 목숨을 걸고 향토를 지키겠다고 하는 향토애정신과 구국일념에 불타고 있었다.

  이들은 한결같이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이 오직 애향의 정신으로 충일되어 있었다.

  둔남면 자경대의 조직과 그 임원은 다음과 같다.

      대         장    박종수

      부   대   장    김정기

      총 무 부 장    장상순

      조 직 부 장    김준배

      동 원 부 장    김창진

      감 찰 부 장    정일천

      동원부차장    한덕봉

      감찰부차장    김구현

 

  자경대의 간부들 가운데에서 대장과 부대장을 제외한 전임원들도 모두들 보초근무에 임했는데, 60여명의 대원들은 출동하기 전이나, 보초근무에 들어가기전에는 출발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군가를 부르는 것이었다.

  이들은 열을 지어 선 채 양 손을 양 허리에 짚고 서서 몸을 좌우로 크게 흔들면서 군가를 불렀다.

  이들, 대원들이 씩씩한 동작으로 군가를 부르는 까닭은 향토애 정신을 함양하고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서였는데, 이러한 일은 대부분 집합장소인 자경대본부(전 오수중학교 교정)나 둔남면사무소 앞 광장 등지에서 행하여지고 있었다.

  대원들이 부르는 군가소리는 풀벌레가 울어대는 가을 밤하늘을 찌렁찌렁 울려나가는 것이었다.

  이들, 자경대원들의 군가 소리는 가는 곳마다 여기 저기서 메아리 치고 있었기 때문에 동네 아이들도 곧잘 즐겨서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양양한 앞길은 바라볼 때에

     혈관에 파동치는 애국의 깃발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들어라 우리들의 힘찬 맥박을

     가슴에 울리는 조국의 소리

 

  김동석 둔남면장은 오수의 중심부에 위치한 원동산에 면민들을 모아놓고 시국강연을 하고 있었다.

  원동산은 소사의 위기에서 주인을 구한 개가 불에 타죽었다는 충견의 전설이 비석에 새겨져 있는 곳이었다.

  웅장하게 하늘 높이 뻗쳐 오른 느티나무 아래로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에도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사람들이었다.  

  무성하게 우거진 나뭇잎 사이 사이로 열려 있는 푸른 하늘이 이날 따라 더욱 새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마이크 앞에 선 김동석 둔남면장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하였다.

  ................... 친애하는 면민 여러분! 오늘 이와 같이 많이 모여 주셔서 무어라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리도 누추한 쪼각 가마니 위에 앉으시게 했고, 일기도 차가운 형편에 이 원동산에 자리를 잡아서 여러분과 말씀을 나누게 되었읍니다.

  우리는 뜻하지 않은 동란의 수난을 겪으면서 우리의 국군과 경찰 및 수많은 애국동지들을 잃었읍니다. 제가 갇혀 있던 전주형무소에서도 수많은 동지들이 무참히도 학살을 당했읍니다.

  여러분들도 겪으면서 역력히 보셨을 것입니다! 공산당원들의 그 잔악무도하고도 악랄한 만행을 보셨을 것입니다!

  동족을 무자비하게 살해하는 그들의 만행을 보시고 우리 자유세계의 현실과는 너무나도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셨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면민 여러분! 이 참화를 당하시고도 깨치지 않았겠습니까? 저는 역력히 보았습니다. 그들 졸개들의 행동이나, 지휘하는 놈들의 행동을 무어라고 이루 다 표현 할 수가 없읍니다.

  차마 눈을 뜨고는 볼 수 없는 처참한 참경이 또 다시 있어서는 안되겠읍니다. 만일에 수복이 안되고 더 지속되었다면 우리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 우리 고장이 나갈 길을 찾아야만 하겠읍니다.

  제가 내려와 보니, 우리 둔남면은 폐허가 되었읍니다. 놈들이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얼마나 많은 우리의 동지들이 죽어 갔읍니까!

  땅 구덩이 속에다 선량한 양민들을 소 돼지 몰듯 몰아 넣고는 생매장을 시키는가 하면, 우리들이 피땀으로 가꿔서 생산한 농작물까지도 약탈해 갔읍니다.

  심지어는 깨까지 세고, 서숙알 까지 세어서 생산고를 조사함과 동시에, 이것을 수탈하여 배를 채우고 우리를 굶주리게 했읍니다.

  그들은 옥석구분도 아니하고 닥치는대로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입니다. 그 놈들이 모든것을 날조하면서 무참히도 구타하는 것을 저도 당했읍니다마는, 선량한 양민들이 그동안에 얼마나 당했으리오! 무고한 양민들이 얼마나 처참한 형벌을 받았으리오!

  김동석 둔남면장의 눈에서는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이제까지 맺혀 있던 분노와 설움이 한꺼번에 북받혀 올라오가 때문이었다.

  김동석 면장 뿐만이 아니라, 원동산을 메운 면민들도 저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옷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는 사람, 치마폭으로 얼굴을 파묻고 느껴우는 사람, 눈물을 찔끔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동석 면장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후 다시금 연설을 계속하였다.

  ................죄없는 양민들을 살해할 때는 끔찍하게도 도끼로 찍어 죽이고, 톱으로 잘라 죽이는 참혹한 광경을 여러분들께서도 이미 보셨을 것입니다.

  놈들은 농기구로 양민들의 목을 베는가 하면, 돌로 머리를 쳐 죽이기도 했는데, 죽지않고 신음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목숨이 다 끊어질 때까지 쳐죽이던 그 참상들을 일일이 말하지 않더라도, 면민 여러분께서는 직접 보시고 눈물을 흘리셨을 줄로 믿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을 더 드리지는 않겠읍니다마는, 이제 우리는 이 참화를 다시 복구해야 하겠읍니다.

  우리들은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잔비들을 막아내야할 과제를 안고 있읍니다.

  우리는 애국심을 더욱 굳게 다지고, 우리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청년이면 청년, 노인이면 노인, 부녀자면 부녀자가 다 함께 합심협력해서 일사분란한 체재로 하여금 공비를 소탕해야 하겠으며, 다시는 그릇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겠읍니다!

  여기까지 이야기한 김동석 면장은 공산주의자들의 적화혁명전략에 대해서 설명한 다음, 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경대에 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자금 우리면내에서 일어난 애국청년들이 자경대를 조직하여 이 고장을 지키고 있읍니다.

  누가 권한 것도 아닙니다! 이 의혈청년들은 애국심과 정의감에 불탄 나머지 자발적으로 나섰습니다!

  이 분들은 우리 오수와 둔남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인접지역의 주민들까지, 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안녕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희생적으로 나선 분들입니다.

  이 분들은 국군이나 경찰이 아직도 들어오지 않은 이 위험한 때에 방어를 했던 것입니다.

  이분들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방어를 하기로 결심이 서있읍니다.

  그러므로 우리 면민들께서는 이 청년동지들의 의용의 정신을 북돋아 주기 위해서 이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줘야 하겠읍니다.

  아직도 산골마다 은둔해 있는 잔비를 소탕하여, 여러분들이 안심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이 청년들이 잘 싸울수 있도록 물심양면의 지원과 성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읍니다.

  면민 여러분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친애하는 면민 여러분!

  지금도 고초를 겪지만 후일에는 반드시 광명을 얻을 것입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광명이 기다리고 있읍니다.

  오늘은 이상으로 말씀을 드리고, 후일에 다시 자상한 말씀으로 서로 토론을 하고, 좋은 길을 택해서 일해나갈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이상으로 오늘의 집회에 대한 취지의 말씀을 마치겠읍니다.  감사합니다.

  김동석 둔남면장이 연설을 마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연단을 내려 오다가 문득, 올려보는 깃발, 그 태극깃발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힘차게 펄럭이고 있었다.

  푸른 하늘 드높게 펄럭이는 깃발을 바라보는 순간, 김동석 면장의 눈에서는 까닭모를 더운 눈물이 주루루 흘러 내렸다.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탈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 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의 폿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군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유치환의 시(깃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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