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가는

사심 없는 산행!! 지역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김진영

비산비야 非山非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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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매 노적봉 巳梅 露積峰

◎ 산행일자: 2024.11.02.토 . 흘러가는 혼자서 ◎ 산행지: 풍악산 노적봉,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 산행코스: 혼불문학관(들머리)~고속도로 굴다리~마애불좌상(호성암터)~혼불전망대~삼계석문 삼거리능선~닭벼슬봉~질마재(큰골사거리)~오유끼고개(수동삼거리)~노적봉 정상(567.7m)~질마재~강실이숨터~수동임도~고속도로굴다리~혼불문학관(날머리), 원점회귀 ◎ 산행소요시간 및 거리: 2시간 18분, 6.13km, 산길샘 앱 ◎ 노적봉은 해발567.7m로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와 계수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등산로 초입에 혼불문학관이 있어 유명세를 타고 있다. 노적봉은 산세가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듯 하다고 하여 지명에 생겨 났으며, 주로 노봉이라 부른다. 호남금남정맥 성수지맥에서 분기하는 천황지..

호성암 마애여래좌상 虎成巖 磨崖如來坐像

◎ 문화유산명칭: 남원 노적봉 마애여래좌상,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1999.7.9)◎ 위치: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산23-1◎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 혼불문학관 뒤  노적봉 닭벼슬봉우리 아래  커다란 바위에 도드러지게 조각한 높이 4.5m의 마애불상이다.  대체로 원형이 잘 남아있으며 마애불 좌측 아래에 샘이 있고 연중 맑은물이 솟아나오며 마애불앞 공터와 대숲에 호성암터가 남아 있다.  마애불상은 연꽃무늬를 새긴 대좌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두손에 연꽃송이를  모아 받쳐들고 있고 양쪽 팔꿈치 쪽에도 꽃송이가 새겨져 있다. 꽃송이를 받쳐들고 있는 특이한 모습으로 미륵불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 호성암은 어느 도승이 호랑이에게 물려간 한 아이를 구해주고 그아이의 부모로 부터 시주를 받아..

해인사 만불보전 주련 海印寺 萬佛寶殿 柱聯

◎ 해인사 구광루九光樓는 전면  8칸 2층누각으로 해인사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1층부는 북카페로 이용되고 있고 2층은 만불보전이 자리하고 있다. 만불보전 8개 기둥에 새겨진 주련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라 한다.  - 구광루란 화엄경의 내용 중에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실때 眉間白毫미간백호에서 9번의 광명을 발하셨다"고 하는데서   얻은 이름이라 한다.

해인사 대적광전 주련 海印寺 大寂光殿 柱聯

◎ 해인사 대적광전 주련(6구절)   - 대적광전은 화엄경의 교주이신 비로자나불을 모신 전각이며, 전각 기둥에 새긴 주련 또한 화엄경의 구절이 새겨져 있는데 2구절은 고종이 보위에 오르기 전 13세때 쓴 글이고, 나머지 4구절은 흥선대원군이 쓴 글씨이다. 부자간의 글씨인데, 흥선대원군이 고종이 글씨를 허투로 쓴다고 핀잔하며  붓을 뺏어서 나머지 4구절을  마저 썼다고 한다.  주련을 자세히보면 오른쪽 주련 2구와 나머지 4구의 필체가 확연하게 다름을 알 수 있다.  - 주련 밑 동판에 글씨 설명문이 부착되어 있다.

합천 해인사 존상도 陜川 海印寺 尊像圖

◎합천 해인사 존상도  - 1457년(세조3) 세조는 해인사의 고려 팔만대장경 50부를 인출하면서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판전에 대한 중수를 명하였다. 어진 하단의 화기에 따르면 1458년(세조4) 영중추부사 윤사로와 승정원도승지 조석문이 세조의 어진을 조성하여 금탑전金塔殿에 봉안하였다고 한다.이 그림은 불교적인 특징이 두드러져 화승畵僧에 의해 비단에 그려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전기 인경 및 중건 불사를 단행한 세조와의 관계와 해인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경상남도 문화유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해인사 성보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다.(해인사성보박물관) ◎세조 어진

촛대

◎ 해인사 촛대  - 조선시대에 유기로 만들었다.  - 선조가 사명 유정 泗溟惟政(1544~1610)스님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촛대 1쌍이다. 거북모양 촛대는 팔각형의 몸통에 연꽃과 비늘 문양을 새겨 장식하였다. 봉황 모양 촛대는 암수 한쌍의 봉황이 기암괴석 위에 서 있는 모습이다.  파란색과 금색, 분홍색 등으로 칠을 하여 화려함을 더하며 매우 수려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낸다. 해인사성보박물관에 기획 전시 중이다. (해인사성보박물관) ◎ 촛대

금패 禁牌, 칙령패 勅令牌

◎ 금패  - 조선후기에 나무로 만들었다. - 명례궁明禮宮에서 해인사에 봉산封山을 수호할 권한을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사찰에서 직접 처벌할 수 있도록 하사한 금패이다. 해인사는 1897년 명례궁으로부터 *향탄봉산 香炭封山으로 지정되어 산을 제한하고 구획하여 무단으로 들어와 땔나무나 잡목 등을 벌채하는 것을 금지 하였다.   *향탄 香炭: 능, 원, 묘 등에서 제향에 사용되는 숯을 말함. ◎ 칙령패 - 조선후기 나무와 실로 만들었다. - 해인사가 왕실의 원찰願刹 역할을 하였다는 것과 왕실에서 고려대장경이 봉안되어있는 장경판전의 보존을 중요시 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칙령이 적힌 패이다.    *칙령: 어실을 수호하고 산을 막아 금호하며, 13도의 승풍을 바로잡기를 법종찰 도총섭에게 명함. 궁내부 ..

건칠 희랑대사좌상 乾漆希郞大師坐像

◎ 건칠 희랑대사좌상 신라 말~고려 초에 활동한 희랑스님의 조각상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승의 초상조각이다. 희랑스님은 화엄학의 대가이자 북악파의 대표로 고려 태조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과 고려 건국에 크게 기여하여 왕건의 국사國師(스승)로 모셔졌다. 조각상은 고려 10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희랑스님이 생전에 스스로 조성했다 전해진다. 얼굴과 몸체 앞면은 건칠乾漆(삼베에 옻칠을 반복 하는 것) 기법을 사용하고 뒷면과 바닥은 나무로 조성하였다. 등신대와 가까운 크기로 극사실적인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원래 까만 옻칠만 되어있던 것을 이후 후학들이 채색하였다. 특이하게 가슴에 작은 구멍이 있는데, 해인사에 모기가 많아 스님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자 희랑스님께서 자기 가슴에 구멍(흉혈胸血)을..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518호)

◎ 원당암: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 해인사길 141-22(치인리30) ◎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해인사 소속 암자로 방장 원각스님께서 주석하고 계시는 곳이다. 802년(애장왕3)에 창건하여 봉서사라 하였다가 신라왕실의 원찰이라하여 원당암이라 부르고 있다. ◎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518호) - 원당암 보광전 앞에 신라 말기에 조성한 11층으로된 다층석탑과 석등이 나란히 서있는데 9세기 후반 진성여왕시대의 작품이라 추정되고 있다 한다.

고운암(孤雲庵),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

◎ 고운암(孤雲庵),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孤雲先生構邸隱逸之地)◎ 고운암은 1974년 법모法模스님께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한다. 정면으로 가야산 상왕봉(1430m)이 올려다 보이고 그 아래 환적대를 중심으로 백련암과 지족암, 희랑대가 손에 잡힐 듯 정면으로 바라다 보인다.  단지봉(1028m)아래에 자리한 고운암은 해발860여m에 위치하고 있다. 해인사 암자 중 고불암(900m) 다음으로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때 송운암(松雲庵)으로 불린 적도 있다고 한다.◎ "고운선생구저은일지지"는 "고운 최치원선생께서 이곳에  초가움집을 짓고 세상과 떨어져 은거하며 살았던  터" 라 는   뜻이며, 당초 절터에 있었던 비석을 고운암을 중창할 때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 해인사 119소방대 앞쪽..

최송설당(崔松雪堂) 암각서

◎ 최송설당 崔松雪堂 암각서   최송설당 암각서는 해인사 룸비니동산 광장 오른쪽 산등성이 큰 바위 상단에 새겨져 있는데  여간해서 찾기가 쉽지 않다. 답사를 하려면 룸비니동산을 가로질러 광장 오른쪽 산으로 올라가야 되며, 답사가들이 남긴 발길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뿐이다.  바위상단에 최송설당이라 한자로 음각되어 있다. 최송설당을 기리는 시주비와 암각서가 해인사, 통도사,  법주사 복천암, 창녕 도성암, 창원 성주사, 김천 청암사 등 전국 사찰 여러 곳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특히, 해인사와의 인연은 1898년 최송설당이  팔만대장경 전체를 인경 제작하는 사업을 전액 후원하여 1질에 1,270책씩  총4질을 만들어 삼보사찰(통도사,해인사,송광사)에 1질씩 나누어 봉안하고, 1질은 전국사찰에 고루 나누어..

가야산(법전리 칠불코스)

◎ 산행일자: 2024.10.12.토, 흘러가는 혼자서 ◎ 산행지: 성주 가야산 법전리 칠불코스(원점회귀), 소요시간 및 거리 3시간35분, 10.61km ◎ 산행코스: 시작점~법전리 제1공영주차장(성주군 가천면 법전리 1108-2), 종점 가야산 칠불봉1143m,상왕봉1140m - 법전 제1공영주차장(07:54)~임도시작점~법전탐방지원센터(봉양법전탐방로~가야산에움길)~마수(죽전)폭포~임도길 가야9-7표지목~가야9-5~ 칠불능선 탐방로입구~현수교 ~ 만세갑사 폐사지~ 능선 10-3표시목 ~ 철계단오름길10-4~ 10-6 칠불능선~ 칠불봉1433m ~상왕봉1430m ~ 10-6(출구 하산)~ 칠불능선탐방출구~ 임도~ 법전탐방지원센터~ 제1공영주차장(원점회귀 11:30) ◎ 가야산국립공원은 합천군 가야면과 ..

유가야기遊伽倻記 - 홍하문,봉황문,불이문,대적광전 편액

◎ 유가야기遊伽倻記 - 유척기兪拓基 1712년  - 寺之外三門. 日紅霞. 次日鳳凰. 次日不二. 次鐘閣日圓音. 內有正門. 中創法堂. 扁以大寂光殿. 匪解堂筆也.   "절에는 외문이 세곳이 있는데 홍하문紅霞門, 다음이 봉황문鳳凰門,  그다음이 불이문不二門이다. 그 다음에는 종각인 원음각圓音閣이 있다. 안쪽으로 정문이 있고, 가운데 법당이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이라고 쓴 편액은 '비해당 匪解堂'이 썼다. (참고:보장천추 비밀의계곡) ▷비해당 匪解堂: 이용李熔, 안평대군(세종대왕 셋째아들)▷대적광전大寂光殿 편액: 유척기의 유가야기가 쓰인것이 1712년이고, 이후에 해인사에 1780년(정조4)과 1817년(순조17년), 1871년(고종8년)에 세번의 큰 화재가 있었다. 이로인해 안평대군이 쓴 대적광전 편액은 이..

유가야기遊伽倻記(정혜스님定慧)

◎ 유가야기遊伽倻記 - 유척기兪拓基 1712년  有一老釋. 云自妙香來棅. 年今七十五. 神觀不衰. 談辯快爽. 若有道者. 其名定慧.  한 늙은 승려가 "묘향산에서 와서 산 지 올해 75년째" 라 하는데, 신이한 풍모는 쇠하지 않았고 말도 막힘이 없다. 도를 깨달은 것처럼 보이는 그 승려는 이름이 정혜定慧라고 했다. ▷ 정혜스님(1685~1741)은 호가 회암晦庵이다.  해인사에 주석할 때에 최치원의 둔세시를 차운한 시를 남겼는데 이를  바위에 새겼다. 차운시를 새긴 암각서는 농산정 건너편 도로가에 있다.- 차운시   聞道孤雲入此巒. 不知靈跡依何間. 謾將開眼看潯處. 動者流川靜者山.   晦庵 定慧 謹記 - 고운 최치원이 이 산에 들어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신령스러운 발자취 어디에서 머물었는지 알 수 없구나. 느..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학사대 소나무)

◎ 유가야산록遊伽倻山錄 - 최흥원 1757년 西上一高臺. 卽所謂學士臺. 而孤雲手植松已枯. 獨其査在矣. 余以爲此行適値二月. 天又雨 正合植松. 乃命奴採四小松. 植其傍. 後之登此臺者. 其必日措大特學學士之爲. 未知諸僧果護養得長否. ▷ 서쪽으로 높은대에 오르니 이른바 학사대이다. 고운이 손수 심은 소나무는 이미 말라버리고 다만 그 흔적만 남아 있었다. 이번 여행은 마침 이월 달이고, 비가 내려서 소나무 심기에 적당했다. 그래서 종에게 명하여 네 그루의 작은 소나무를 캐어 그 곁에 심으라고 했다. 뒷날 이대에 오르는 자는 반드시 "措大(청빈한 선비)가 특별히 최학사가 한것을 배웠구나"라고 할 것이다. 승려들이 과연 잘 보호하여 키울 것인지는 모르겠다.(참조:보장천추 비밀의계곡) ▷1757년(영조33년) 해인사에 심..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칠성대七星臺)

◎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옥소玉所 권섭權燮 1711년) 골짜기 밖의 흐르는 물 사이에 반석 하나가 있는데 그 모퉁이에 '尹,孫,金,具,梁,洪,鄭"  등 일곱 성이 나란히 새겨져 있지만 유람온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겠으니, 일부러 그 이름마저 숨겨 뒤에 오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케 한것이다. 그 꼭대기의 평평한 곳에 '칠성대七星臺'라 새겼는데 아마 일곱사람의 성을 대의 표면에다 남기고 이로써 호를 삼아 '칠성七星'이라고 떠벌려 자랑한게 아니게는가?(참조: 보장천추 비밀의계곡, 해인사 출판부, 글 종현스님) ◎ 칠성대 : 칠성은 비 또는 인간의 수명과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도교에서 북두칠성을 신앙하는 것에 비유한다. 특히 기우제를 지낼때 칠성신에 염원한다고 한다. - 홍류동 칠성대는 농산정 아래 해인..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치원대, 우암 고운시 석각)

◎ 유가야산기遊伽倻山記 (옥소玉所 권섭權燮 1711년)고운이 일찍이 "미친 듯 내달려 산속 가득 울어대니, 지척간 말소리도 분간키어렵구나, 옳으니 그르니 시비 소리 듣기싫어 흐르는 물을 시켜 온 산을 둘러쌓네" 라는 시를 짓고 손수 물 가운데 평평한 바위에 썼지만 여울물이 사납고 새긴 것이 깊지않아 이미 다 마멸되고, 다만 '광분고교狂芬故敎' 넉 자만 구별할 수 있었는데, 우암선생이 계곡 북쪽 바위 사이에 다시 그 시를 모사해 새겨 놓았다. (참조: 보장천추 비밀의계곡 중에서, 해인사출판부) ◎장소: 가야산 홍류동계곡 농산정, 우암 송시열 암각서▷ 최치원 둔세시  광분첩석후중만  狂奔疊石吼重巒    미친물 바위 치며 산을 울리어   인어난분지척간  人語難分咫尺間    지척에서 하는 말도 분간 못하네  상..

가야록伽倻錄(가야산 등산기행 1625년)

◎남계 이중무 柟溪 李重茂위 가야산 유람기인 "가야록" 등산기행 따라가기  ▷ 가야록 등산기행 코스: 해인사海印寺→ 봉천대奉天臺→석굴→관통굴→샘가→우수봉(牛首峰)정상→우비정샘물牛鼻井  ▷ 산행코스: 2024.8월 해인사→토신골 → 봉천대 → 석굴 → 관통굴 → 우두봉(상왕봉,우비정) → 칠불봉 가야록(1625년 9월 15일) 새벽밥을 먹은 후에 건장한 한 화상으로 하여금 점심 밥 상자를 짊어지고 앞에서 인도하게 하였다. 이 날이 15일이다. 봉천대(奉天臺)에 올랐는데, 여기서부터는 산이 더욱 험준하고 길이 더욱 위험하였다. 수풀이 우거져 근근이 기어갔다. 한 곳에 이르자 석굴이 있었는데, 몇 간의 방 크기만 하였다. 돌문을 따라 들어가자 냉기가 뼈에 사무쳤다. 승려가 말하기를, “이곳은 얼음이 언덕처럼 ..